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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양 Sep 13. 2024

우리가, 걷는 법을 배운 적 없어도



무더운 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옷장 속 깊이 넣어둔 두꺼운 코트와 패딩을 다시 꺼낼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안다. 그녀와 함께 걷던 거리들, 나란히 앉아 있던 식당, 함께 웃었던 영화관... 그 모든 곳이 아직 한동안 변함없이 그녀를 닮은 채로 남아 있을 거라는 걸.



내게는 이성 친구와는 전혀 다른 결로 사랑하는 여자가 한 명 있다. 그녀는 나의 친누나이다. 누나는 참 독특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그녀를 표현하자면, 무심코 던진 말로 상대방을 머쓱하게 만들면서도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때로는 잦은 투정을 부리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은 끝내 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한 듯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그녀만의 고유한 색을 절대 잃지 않는 사람이다.



2024년 겨울, 그런 누나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 무겁고 뜨거웠던 유골함을 품에 안고, 계단을 올라, 작은 상자에 형을 놓아두었다. 나는 “이 방이 너무 좁은 건 아닐까?"생각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곳을 일찍 혹은 뒤에, 나중에 떠나는 것뿐이었다. 2024, 나는 하나의 색을 잃었다. 아마도,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결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 사람들은 그 말을 곧잘 위로 삼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시간은 약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단지 우리가 아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기회를 줄 뿐이다. 그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저 그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에 '내성'이 생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고개를 돌리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는 숨 쉬는 법을 또 걷는 법을 배운 적 없다. 아픔을 이겨내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순간. 처음에는 그 빈자리가 견디기 힘들었고,  일상에 큰 구멍을 남겨두었고. 계절이 한 바퀴를 돌려는 찰나, 상실은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별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는 건,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매일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작은 기쁨을 찾고, 남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 감사할 뿐이다. 끝끝내 걷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우리는 그 길 위를 계속해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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