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면 나는 없는 말도 못해. 농담도 하지 못하고 못된 말은 더더욱 못해. 고로 나는 네가 아프면 아무것도 못해.
시린 날이야. 날씨는 표정을 싹 바꿨어. 찬 바람이 불어. 네가 아픈 덕에 택시를 탔어. 네가 아픈 덕에 튀기지 않은 치킨을 먹었고, 네가 아픈 덕에 야근을 하지 않은 것 같아.
난 웃통을 벗었고 시월에 전기장판은 뜨끈하지. 환기를 하려 이쪽 저쪽 창문을 열어두고, 네게 두꺼운 이불을 두 개나 덮어줬어. 이럴 때 연초를 태우면 안 되겠지. 전자담배를. 피아노를 쳐서도 안 될 거야. 네게는 소란스러울 테니까. 언제나처럼 시편을 읽을까 하다가 ‘아, 오늘은 기도하는 날이구나. 너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구나.’
요즘 사람들은 나를 매니저, 작가, 형제라고 부르지. 언제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변해. 아니, 정확히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높낮이와 단어가 변하지. 근데 너는 ‘항상’이구나. 항상 나를 당신이라 하네. 스킨십도 연애에 큰 관심도 없는 내게 너는 항상 당신이라 하네. 네가 아프니까. 오늘은 네가 생각하는 당신이 되어줄게.
최근 다시 찾은 취미가 있어. 그것은 바로 꽃을 사는 거야. 냄새 한 번 맡지 않고,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침대 옆 물컵에 꽃다발을 꽂아둔 채로 힐끔힐끔 바라보는 거야. 네가 아픈 덕에 알았어. 나는 너를 힐끔하며 바라본다는 것을.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 그저 너의 곁에서 조용히 너를 바라보며, 네가 나아지길 바랄 뿐이야. 그게 나의 사랑일지도 모르지.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필요 없는 그런 순간들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