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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통의 원인은 저항에서 온다.

by 태연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삶의 저항에서 온다.


이건 좋고 저건 싫고 이렇게 내가 부여한 딱지로 싫은 건 밀어내며 저항함으로써 고통을 겪는 다.

삶은 나를 위해 존재하며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해 일어난다. 고로 모든 일들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

돈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나에게 아이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집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즉 나의 상태가, 나의 상황이 그 무엇이어도 좋다. 이 세상엔 옳고 그름은 없으며 좋고 나쁜 것도 없다.

오직 중립의 상태만이 존재하며 삶에 대한 경험과 그에 따른 지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왜 우린 모든 걸 평가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며 분리 짓는 걸까?

이는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무한한 지성이 아닌 몸을 가진 나약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몸을 나라고 여기는 에고는 생존을 위해 그러한 생각들을 하게끔 자동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고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립의 상태인(생각과 감정을 지켜보는 자) 나로 돌아와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용하며 진짜 나인 사랑으로 머물렀을 때 모든 고통은 눈 녹듯 사라지고 삶은 최고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만약 내가 불편한 감정이 든다면 이는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메시지이다. 내가 진짜 나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켜보는 자가 되어 그 고통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생각의 근원을 찾아 다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 우주는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며, 나만이 존재한다. 나는 사랑이며, 이 우주의 창조자이며, 전체의 하나이다.

삶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며 나를 인도하고 있다. 고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은 완벽하다. 그러니 모든 것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그대로로 인정하라.

이러한 앎 속에서 우주로써(무한한 마음으로) 머물 때 고통 없이 인생의 유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자신을 잊고 드라마 속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 것이다. 그러니 진짜 나를 반복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게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 전, 그리고 하루 중 어느 때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켜보는 자로 되돌아가라. 침묵의 고요 속에서 있음에 참나를 느껴라. 삶의 모든 일은 나를 위해서이지만 인간적 자아로는 전체를 보지 못하여 이를 이해할 수 없다. 어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 가. 나를 공격하고 나의 것을 뺏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이 어찌 나를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 가. 하지만 큰 나가 되어 이를 지켜보는 자가 되었을 때 알게 된다. 이들은 나를 위해 그들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나를 깨우기 위해(에고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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