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죽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린 말한다.
죽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죽음을 통해 듣는다.
죽음이 우리에게 해주는 말들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는 그 속에서 삶의 진실과 진짜 나,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었기에, 죽음 속에서 우리는 알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 나는 그가 떠났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침대 맡에 놓인 그의 옷이 그대로였고, 지갑은 여전히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손때 묻은 커피잔, 미처 개지 않은 이불, 방 안 가득 남아 있던 익숙한 냄새까지도, 마치 그가 어디 잠시 다녀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부정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닐 거라고, 곧 깨어날 꿈일 거라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가 정말 떠났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는 것을. 그가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는지를.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너무도 당연해서, 너무도 익숙해서,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내가 그의 부재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 거대한 슬픔이, 바로 내가 그를 사랑했던 깊이라는 것을.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무력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도대체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했다.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지. 왜 이토록 아파야 하는지.
그러나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이 슬픔의 깊이가 곧 사랑의 깊이라는 것을. 그를 잃고 난 뒤, 나는 나 자신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나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나 자신의 이름조차 꺼내지 못하였을 때 나는 내 삶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진짜 나답게 살지 않았다.
삶이 무겁고, 어렵고, 힘겹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삶을 가볍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사소하게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과의 사소한 다툼에 집착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순간에, 나는 그냥 웃음이 났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지 않았다. 나는 그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생은 그렇게까지 심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삶은 그저, 흐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그를 잃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나는 더 이상 삶이 무겁지 않다고 느꼈다. 죽음은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나의 허상을 붕괴했다. 나를 더 깊이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었다. 그를 잃고 나서, 타인의 슬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아픔이,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외로움이 더 이상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품을 수 있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사랑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그 사랑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죽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이토록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삶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를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그를 내 안에 품고 살아간다. 그가 나에게 주었던 모든 사랑과 함께.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사랑을 남기고 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