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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날 꺼내줘

by 태연

언제부턴가 나는 세상 속에서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창밖의 햇빛은 여전히 찬란했지만, 내 마음은 어딘 가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누군가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문을 닫고, 벽을 쌓고, 바깥과의 연결을 잊은 채 살았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대화 속에서도, 일상 속에서도 나는 점점 더 나를 잃어갔다. 말을 하면서도 내 말이 아닌 것 같았고, 웃으면서도 웃음이 내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그때, 마음 한 켠에서 조용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 밖으로 날 꺼내줘.”


분명히 내 안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나는 몰랐다. 그게 진짜 ‘나’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나이라는 숫자가 정한 경계 안에서만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살아온 탓에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희미해져갔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삶의 중심엔 '나'는 없었다. 누군가의 보살핌에 절절히 매달렸으며 타인들의 입 위에 나를 올려두었다. 결국 나는 두 발로 설 수 조차 없었고, 내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 성공, 역할, 책임이라는 두꺼운 껍질 속에 갇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잊었다. 내가 원했던 삶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꿈꿨는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했다. 죽음이라는 가장 차갑고 가장 명백한 끝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죽음이 가져간 건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만이 아니라, 내가 세워놓은 삶의 모든 기준들까지도 함께 무너뜨렸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바로 나였음을 깨달았다.




삶은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드러냈다.

나는 내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써왔던가.

세상이 만든 틀을 따라 살려고 애쓰며, 사람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성공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끝없이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 삶을 통째로 저버리고 싶었던 순간조차 나는 누군가가 나를 꺼내주길 바랬다. 이 삶이라는 무게 속에서, 이 세상이 만든 틀 속에서.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꺼낼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내가 만든 감옥의 열쇠는 오직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도,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오로지 나였다.

내가 내 자신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나의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부족함도, 슬픔도, 실패도, 후회도,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품기로 했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나의 행복은 사회가 정한 기준 속에 있지 않았다.

나의 아름다움은 타인의 평가나 숫자에 있지 않았다.

나의 가치는 남들이 정의한 모습 속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내 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했을 때 찾아왔다.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 자신에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찾아왔다.

나는 더 이상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 안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기로 했다.

그때서야 삶은 더 이상 무겁지도 힘겹지도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나의 목소리, 더 이상 나를 부정하지 말라는 나의 목소리,

그리고 진짜 나로 살고 싶다는 나의 목소리를 비로소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기로 했다. 내가 만든 그 벽을 허물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꺼내기로 했다. 내가 나 자신을 꺼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자유로운 나, 진짜 나로 살아가는 그 순간부터 삶은 비로소 온전한 나를 위한 것이 되었다.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빛은 언제나 밖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빛은 내 안에도 있었고, 그 빛을 향해 가는 길은 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를 꺼내는 길, 그 길은 결국 내가 나를 꺼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직 나만이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음을,

내가 나의 빛을 허락할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됨을 말이다.


이제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 세상이 나를 뒤흔들긴 해도 이젠 나의 빛은 올곧은 곳을 비춰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세상 밖으로 당신을 꺼낼 수 있는 건 오직 당신뿐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이 그 문을 열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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