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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의 기반

by 태연

나는 오래도록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단단하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은 사실 하나씩 나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작은 파편처럼 보였던 일들이 모이고 이어져 어느새 벽을 이루었고, 나는 그 벽 뒤에 숨어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 벽이 나를 지켜줄 줄 알았지만, 결국 그 벽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지켜야 할 줄 알았던 것들, 버텨야만 살아남는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내 손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더는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마음은 더 환해졌다. 울기보다는 멍해졌고, 멍한 그 틈에서 오래된 숨 같은 게 터져 나왔다. 거기엔 슬픔도,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오직 ‘이게 나구나, 이게 진짜 나였구나’라는 조용한 인식만이 맴돌았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다. 끊임없이 뭔가를 해내고, 지켜내고, 견뎌야 했고, 누구에게도 나약해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삶은 한 겹 한 겹 쌓여 마치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들로 채워진 지도 같았다. 그리고 그 지도 위를 따라가다 보니 길이 자꾸 사라졌다. 이 길이 맞나? 내가 원한 방향이 맞나? 되묻는 순간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채, 나는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멈췄다. 멈춰진 순간에도 스스로를 질책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멈춤은 내 영혼이 보내준 선물이었고, 그 조용한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너무 오래 살아왔다. 좋은 딸, 좋은 연인, 좋은 친구, 좋은 사람... 수많은 타이틀이 내 앞에 놓였고, 그 이름들을 지키느라 나를 잃어갔다. 그런데 그 모든 명칭들이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단 하나, 내 숨이었다. 내 숨이 살아 있다는 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였다. 사람들은 나를 실패했다 말할 수도 있다. 파산이라는 단어, 아픔이라는 시간, 관계의 단절, 몸의 고통, 그리고 반복된 무너짐. 하지만 이제 안다. 그것들은 내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가 쌓고 있던 거짓의 무대가 허물어진 것뿐이라는 걸. 무너진 그 자리에 흙냄새가 스며들었고, 그 위로 다시 나의 뿌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기반이었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서 드러나는 기반.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조차도 내 삶에 필요한 등장인물이었다. 그들은 나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깨우기 위해 왔다. 나는 모든 아픔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아직도 두렵다.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이젠 내 두려움과 흔들림을 품는다. 그것마저도 나이기에. 나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로 여기 있다. 비로소 내가 나로 살아가는 순간을 비난도 허락도 기다리지 않은 채 그저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살아남기 위해 내가 쌓았던 모든 정의들 없이도 나는 살아 있다. 숨 쉬고 있고, 느끼고 있고,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여기 있다. 나는 내가 무너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는 걸 안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날들이 결국 나를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걸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이제 완성된 삶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과정이고, 여정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빛의 일부니깐. 그리고 그 빛은 지금 이 순간도 나를 향해, 나로부터 흘러가고 있다.


나는 다시 나를 걷는다. 이전보다 느리지만 더 진실한 발걸음으로, 결과보다 존재를, 형식보다 연결을, 생존보다 기반을 선택하며. 그래서 지금 나는,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기반 위에 진짜 삶을 천천히 다시 세워간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로 살아가는 삶의 첫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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