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멋진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조용히 숨 쉬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기억해 내는 일이 아닐까. 그것은 잊고 살았던 감각들을 아주 천천히, 아주 다정하게 되찾아가는 여정이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틀었고, 거기엔 나를 알고 있다고 믿는 얼굴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가 부른 이름이 정말 ‘나’였을까? 내가 매일같이 불리고, 대답하고, 소속되어 살아온 그 이름이 과연 진짜 나였을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이름도 없었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존재였고, 울음 하나에도 생명이 충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점점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이름이 생기고, 성격이 덧붙고, 역할이 주어졌다. 칭찬과 비교,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나라는 감각은 점점 작아졌고, 설명 가능한 모습만이 살아남았다. 이제는 나조차도 나를 설명하려 든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걸 좋아해.”
“나는 이런 일을 해.”
그 모든 말들이 때론 진심 같지만, 어쩐지 조심스럽게 내 본모습을 감추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나답게 산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또렷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문득문득, 그 ‘좋아함’조차도 어디에선가 배워온 감정처럼 느껴지곤 했다. 마치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해야 할 것 같았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내 기쁨과 슬픔이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감정의 온도는 내 안이 아니라 타인의 말투와 시선에 의해 조율되고 있었다.
내가 진짜 좋아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있던 시간. 개수대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순간. 말도 없고 의미도 없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용해지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다만 가만히 머물던 감정들.
일상의 감정은 대부분 너무 미세해서 쉽게 지나친다. 편의점에서 내가 늘 고르는 간식을 고를 때의 익숙함, 가을빛이 스민 오후에 인도 위 나뭇잎 그림자를 밟을 때의 느낌, 무기력하게 스크롤만 넘기던 하루 끝에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허전한 아름다움. 바로 그 모든 찰나들 안에, 말없이 숨 쉬는 ‘진짜 나’가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가 아니라, 어떤 정의도 덧붙이지 않은 채 살아 있는 나였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나로 살아 숨 쉬는 내가 거기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거울 앞에 섰다. 그저 물을 마시다 우연히 시선이 닿았고, 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민낯이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머리도 대충 묶은 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더 나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했을 것이다. 그렇게 맨얼굴로는 절대 집 밖에 나갈 수 없었으니까. 나는 늘 누군가의 시선을 먼저 생각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어야 가장 예뻐 보일까, 이 장소엔 어떤 색이 어울릴까, 저 사람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나의 편안함보다는 상대방의 평가가 더 중요했다. 예쁘게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고, 옷을 고르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꾸미는 게 아니라 감추고 있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조정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건 익숙하지 않은 나와 조금씩 친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서툰 나, 모호한 나, 자꾸 흔들리는 나를 이젠 그만 미워하고, 그냥 바라봐주는 것.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대신, 지금 이대로의 나를 “괜찮아”라고 안아주는 그 조용한 용기 말이다. ’ 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그 좋아함이 진짜 내 안에서 왔는지’를 살피는 게 중요해진다. 사람들의 반응보다는, 내 안의 작은 울림을 들어주는 것. 가끔은 혼란스러워도 괜찮고,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 누구의 기준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건 어쩌면 진짜 나의 길에 더 가까워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불안함, 그 낯섦 안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그 자리에 있어주는 일. 자꾸 바꾸려 하기보다, 잠시 멈춰 바라봐주는 마음. 그게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연습이 아닐까.
삶은 나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니?”
나는 이제 그 질문 앞에서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살아가고 있어. “
깨달음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하루 속, 익숙한 풍경 속에서 조용히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움직임이었다. 무언가를 잘 해내려 애쓰기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는 나에게 충분히 귀 기울이는 것. 실패한 날에도, 말실수를 한 날에도, 마음이 복잡하게 얽힌 날에도, 그럼에도 여전히 나로서 나를 허용하는 일.
그렇게 매 순간 나에게로 돌아오는
이 작고 고요한 선택들이
결국 나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되기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이 삶을,
이제, 나답게 살아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