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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유가 꼭 있어야 할까

사랑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존재하기에 사랑한다

by 태연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괜찮은 척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괜히 가슴 한켠이 푹 꺼지는 기분.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묵직하게 고여 있는 것 같은 날. 그럴 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왜 이렇게 무거운 감정들을 매일같이 안고 살아야 하지?'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이 물음은 어쩌면 가장 솔직한 마음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혹시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정말 단 하나,


'사랑하기 위해서'


인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가끔은 아무 이유없이 그저 가슴이 울컥하는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면 어떨까. 그것이 누구를 향한 것이든, 무엇을 향한 것이든, 결국 사랑은 존재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고요하고도 명확한 진동이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소음을 지나오면서 그 이유를 잊은 것이다. 살기 위해 애썼고, 버텨야 했으며, 지켜야 할 것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생존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걸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감정앞에서 유난히 약해졌고, 그리고 어떤 순간에 이상하게 살아있음을 느꼈는 지. 그런 기억들 속에는 늘 '사랑'이라는 파동이 숨어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바람결이 스친 노을, 혹은 나 스스로에게 '오늘도 잘 버텼어.'라고 말해주는 밤. 그게 어쩌면,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이유는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부족한 채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진실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닐까.

모든 실수와 모순, 모든 흔들림과 후회, 모든 상처와 고백들마저도 결국엔 나를 더 깊게 만드는 재료가 되어주니까. 세상은 끊임없이 말했다. 더 나아지라고, 더 가지라고, 더 올라가라고.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건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얼마나 충분했는지를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것 안에서 되살아났다. 누군가의 손을 놓지 않았던 어느 날, 그 사람의 눈물에 함께 울던 순간, 아무 말 없이 그 곁을 지켜주었던 시간들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의 곁에 있어주기로 한 그 많은 순간들.

세상은 나를 몰라도, 나는 나를 알아야만 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갖게 된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 내가 나로 살아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

아침에 눈을 떴고,

누군가를 떠올렸고,

말할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아렸고,

땅을 밟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조용히 견뎠고,

때로는 웃었고,

그렇게 살아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사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받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사랑이라는 파동이 내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위해. 그 진동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가질 수도, 뺏을 수도 없는. 그저 존재라는 것 자제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어떤 고요한 힘.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통해 사랑을 배우기도 하지만,

결국 가장 깊은 사랑은 나를 통해,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사랑이다.

이해가 아니라 포용으로,

판단이 아니라 감각으로,

조건이 아니라 숨결처럼.


사랑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존재는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어떤 대단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 기억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삶은 매일같이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숨을 쉰다.

그리고 그 숨결 안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떨림이 들려온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서 사랑으로 숨 쉬고 있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오늘도 나로 살아낸 그대에게, 이 하루가 이유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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