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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된 사랑의 방식으로

한때 하늘을 품었던 내가 나를 기억하는 이야기

by 태연

공항이었다. 평범한 직장생활에 찌든 내가, 그나마 숨통을 틔우듯 가장 소중히 여기던 여름휴가를 떠나기 위해 도착한 곳. 그날 공항은 유난히 붐볐고, 나도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는 설렘과 피로가 뒤섞인 얼굴로 줄을 서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날아오던 시선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대학교 시절, 함께 승무원을 준비하던 친구가 하늘색 유니폼을 입고 누군가의 여행을 위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그녀의 유니폼은 마치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꿨던 꿈의 형태였고, 나만 시간이 멈춰 선 채 그 풍경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여행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똑같은 시작선에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다른 하늘 아래 서 있었다.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부러움과 자책, 미련과 회피, 모든 감정이 얽히고설킨 채 조용히 나를 흔들었다. 속으로는 '너무 잘 됐다, 예쁘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딘가 속 깊은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삼키고 있었다. 왜 나는 아직도 그날의 풍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걸까. 어쩌면 나는, 꿈보다 먼저 나를 포기했던 건 아니었을 까.






20대 초반,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서 토익책을 펼쳐 놓고, 면접 복장을 서로 맞춰보며,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될 거라는 환상을 나누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사랑했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고, 가슴이 뛸 줄 알았고, 아직 가능성이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 면접에 번번이 떨어졌고, 현실은 차가웠다. 반복되는 불합격 속에서 나는 내 꿈보다 생계를 먼저 선택해야 했고, 그렇게 작은 회사에서 안정이란 이름으로 내 열정을 봉인해 버렸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 숫자는 유난히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더 이상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틀 속에서만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이 작은 세계에 나를 가두는 것이 내 안의 무언가를 천천히 말라가게 만든다는 걸. 그래서, 용기를 냈다. 어쩌면 늦었다고 느껴질 타이밍이었기에, 그 용기는 더 간절했고, 그 간절함은 더 멀리 바라보게 했다. 국내 항공사에 도전하기엔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아졌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의 더 넓은 하늘을 향해, 유럽을 돌며 외항사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체코 프라하, 고요하고 낯선 그 도시에서, 면접장 안의 공기조차 반짝였던 하루가 있다. 그날 면접관의 눈빛 속엔 분명, 내 안의 무언가가 닿은 듯한 따스함이 있었고 나 또한 오랜만에 진짜 살아 있다는 떨림을 느꼈다. 내가 나를 믿어볼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끝내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손끝에서 스르르 빠져나간 기회들. 닿을 듯 닿지 않는 메이저 항공사들의 문턱. 언제부턴가 마지막 문장만 남겨진 불합격 메일들을 읽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안으로 접혀들었다. 그때 나는 몰랐다.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걸. 꿈을 향해 내딛던 발걸음이 아니라, 나를 놓아가는 뒷걸음이었다는 걸.






이제 나는, 예전처럼 뚜렷한 형태의 꿈을 좇지 않는 다. 그보다 더 깊고 넓은 세상을 내 안에서 탐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깥의 하늘을 바라보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조용히 나를 이끌리는 흐름에 따라, 나는 그저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한 화면 속 승무원의 모습이 오래전 공항에서 스쳐간 친구의 얼굴과 겹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장면이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잔물결처럼 나를 흔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단순한 부러움만은 아니었다.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 잊은 줄만 알았던 회한과 애틋함,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오랫동안 나를 스스로 밀어내며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는데도, 나는 결국 그 꿈을 향해 끝까지 나를 믿어주지 못했다. 어린 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그래도 나, 정말 애썼어.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어."


그 목소리는 너무 작고 조용해서, 나는 종종 듣지 못한 척했다. 대신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축소했고, 누군가의 반짝이는 성취 앞에서 한 발 물러섰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했고, 분했고, 자주 무기력 속으로 도망쳤다. 공항에서 그날 올라온 감정은 ‘승무원이 되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상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짜 나로 살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를 꾹 눌러가며 버텨낸 나에게 느끼는 깊은 미안함이었다.

그때도,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는 방식으로라도. 너무 일찍 손을 놓거나, 너무 오랫동안 움켜쥐고만 있다가, 결국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모든 시간을 향한 잔잔하고도 길게 이어지는 슬픔. 그 감정은 지금도 내 일상 속에 작은 조각처럼 남아 있다. 누군가 승무원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애써 웃어넘기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 화면에 나오면, 어느새 가슴 언저리가 조용히 뻐근해진다. 그건 내가 아직도 그 하늘을 완전히 놓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아니, 어쩌면... 정말로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다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 꿈을 이루려 애쓰기보다는, 그 꿈을 품고 설레던 '나'를 기억하려 한다. 하늘을 동경하던 그 시절의 나. 세상의 너머를 바라보며, 뜨겁게 살고 싶어 했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았던 그 아이. 나는 그 아이를 잊고 싶지 않다. 다시 하늘을 날지 않더라도, 그때의 나처럼 삶을 사랑하고, 하루를 끌어안고, 내 안의 빛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나는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것들을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소중히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오늘, 내 안의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하늘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날지 않아도 괜찮다.

그 하늘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으니까.


그리고 문득, 나는 조용히 묻게 된다.


그 꿈이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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