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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이름의 무게를 내려놓는 순간

이제 내 안에 나를 살게 하기로 했다.

by 태연

문득,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손이 내 것이기만 할 때, 늘 부끄러웠다. 뼈마디가 굵고 피부결이 투박한 이 손은, 아이였던 내게 ‘여자다움’이나 ‘고움’ 같은 이름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 손을 감추는 법부터 배워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손을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을 마치 타인의 손처럼 바라보았을 때 내 마음은 뜻밖의 방향으로 반응했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이 손은 많은 일을 해온 손이다.
무언가를 붙잡고, 놓치고, 다시 쥐어보려 애쓰고, 때로는 접고 감추고 껴안고 놓아주는 모든 것을 해온 손.
내가 나를 ‘나’라고 여길 때는 늘 부족했고, 더 예뻐져야 했으며, 고쳐져야 할 대상이었지만, 그 ‘나’라는 인식을 벗겨낸 순간, 이 손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그때 깨달았다.
‘나’라는 이름은, 어쩌면 내가 스스로에게 씌운 가장 무거운 틀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왜 우리는 자신에게만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남에겐 한없이 관대할 수 있을까.
왜 나는 늘 내 마음의 자리를 미루고, 타인의 기분과 입장을 먼저 살펴왔을까.
왜 나는 누군가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내 안의 전쟁을 침묵해야 했을까.
그 안에는 내가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게 습관이 되고, 태도가 되어, 결국 내가 없는 세상이 내 세계가 되었고, 그것을 ‘착함’이나 ‘배려’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온 것 같다.
하지만 진실은,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나’로서 존재하는 것, 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내 감정이 누군가의 기대에서 어긋나고,
그 틈에서 관계가 멀어질까 봐. 내가 진짜로 나일 때, 사랑받지 못할까 봐. 이해받지 못할까 봐. 외면당할까 봐. 그래서 나는 조용히 나를 접고,
타인의 평온 안에 나를 숨겨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의 안에는 나를 위한 방 하나 없었다. 사랑을 주는 방식에서도, 나는 언제나 타인을 먼저 안았고, 나 자신은 마지막에야 겨우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 그 손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벗어나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나’라는 이름은 내가 만든 프레임이었고, 그 안에 나를 가두고 조종해 온 것도 결국 나였다면, 이제는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나를 고쳐야 할 존재로 보지 않기로 했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가혹한 환상에서 벗어나,
이미 나의 모든 파동이 온전한 선율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미완성은 누군가에겐 감동이고, 나의 어설픔은 또 다른 이의 위안이 될 수 있으며, 내가 흘리는 눈물조차도 이 세상의 구조 어딘가에서는 아름다운 빛의 굴절로 반사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기로 했다.
나는 지금, 나에게 말한다.
이제는 괜찮다고.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웃음을 연습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감정을 억누르지 않아도,
이 손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 어떤 말보다 단단한 선언으로, 나는 나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타인을 위하느라 비워두었던 마음의 방 한켠을,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생명에게 허락한다. 그 방엔 빛이 들고, 바람이 스며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되는 평온이 머문다. 내가 나를 벗어날 때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가 나를 놓을 때 비로소 내가 돌아오며, 내가 ‘나’라는 이름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내가 된다.

그래,
‘나’라는 이름의 무게를 내려놓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답다. 누구의 자식도 아니고, 누군가의 역할도 아니고, 타인을 위한 착한 존재도 아닌, 그저 나.

그 존재 하나만으로 이미 사랑이 되어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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