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쉬지 않고 차를 몬다면, 엔진은 어떻게 될까?
이쯤 되면, 일기장 어느 한편을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일기장을 뒤적이다 어느 날에 쓴 일기에 멈췄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어느새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 참 빠르다. 요즘은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올라 하루를 시작하고 하지 못한 일들의 아쉬움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느낌이다.
이뤄낸 소소한 성과들도 있지만, 이루지 못한 대단히 많은 일들도 있다.(이뤄낸 것은 왜 작게, 이루지 못한 것은 왜 늘 크게 보이는 걸까?) 요즘 나는 굉장히 작고 나약해진 기분이다.
하나를 하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지점들이 많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지, 순간을 즐겨야지. 말뿐이다. 늘 지금 하고 있으면서 지금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요즘 이야기하는 성인 ADHD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로 때로는 심하게 집중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글자가 제대로 읽히지 않을 때가 있었고, 일은 많고 바쁜데 머리가 똑소리 나게 움직여주지 않아서 스스로를 학대한 적도 있다. (무서운 학대까진 아니고, 벌서듯이 서있는 정도.)
집중하지 못하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옅어진다. 믿음이 옅어지면 내가 현재 놓인 상황이 뚫고 나가기 어려운 벽 앞에 놓인 기분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짓누르고 더 집중하기 힘든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문제를 최대한 내버려 두었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 해결하는 성향을 가진 나는, 나의 이 상황을 꽤나 오랫동안 묵혀두었다. 한 1년 정도를 이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어느 날엔가, 눈물이 이유 없이 흘렀다. 그리고 사람의 눈을 보는 게 무섭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스스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병원에 갔다. 난생처음 가는 진료과목의 병원이었다. 40분 동안 900여 개 항목에 달하는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30분 기다렸다가 원장님을 마주했다.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 높아요. 우울지수도요. 괜찮아요?"
눈물이 나오려 하는 것을 이성이 막았다.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그렇군요. 그러면 이해가 되네요. 아무래도 그런 환경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때론 그냥 쉬어야 해요. 쉬지 않고 차를 몰면 엔진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그렇게 해본 적은 없어서."
"지금 당신의 상태가 딱 그렇거든요. 전처럼 차가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느껴질 거예요. 브레이크는 말도 잘 안 들어서 때론 장애물을 만나서 놀라서 핸들을 꺾어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정말 쉬어야 해요. 쉬기 힘들어도 의식적으로 하루에 3끼를 밥을 먹듯이요."
"전 제가 성인 ADHD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성인 ADHD는 충동성이 높아요. 그런데 충동성이 높은 사람으로 나오지 않고 오히려 절제력이 높다고 나와요. 제가 걱정되는 부분은, 우울 지수가 꽤나 높아서요. 다른 검사지를 줄 테니 꼭 작성해서 내일까지 수간호사에게 주고 갈래요?"
친한 동생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언니, 우리 몸은 정말 신기하게도 똑똑해서 우리가 아프기 전에 멈추는 신호를 준대. 언니 뇌는 언니를 지키기 위해서 집중력을 흐트러트린 거였어. 그 신호를 무시하지 말았으면 해."
잘 쉰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잘 쉴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또, 일과 쉼의 밸런스도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하루의 끝에 내가 나에게 칭찬해주고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친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계속 일만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또, 스스로의 노력과 과정을 칭찬 없이 몰아세우기만 한다면 안타까울 것 같다. 나를 타인화해 보니, 잘 쉬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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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한 정신의학과 및 상담센터를 추천한다. 우울증은 '노력'으로 나아지는 질병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는 별 것처럼 '감정'일 뿐 치부할 수 있지만, 전문의 상담을 통해 약물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병이 심각할 수도 있다.
1. 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서울 중구 동호로 180 동양빌딩)
원장님께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신다. 또, 정확한 상태 파악을 위해 검사지 작성과 대면 질문을 통해 꼼꼼하게 확인하고 검진하는 곳이다.
2. 이화빛들번아웃 심리상담센터 (서울 마포구 도화동 173 1450호)
이대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상담심리를 전공한 분들이 모여 만든 심리상담 협동조합이다. 정신의학과 방문이 부담스럽다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해서 심리상담을 진행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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