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워 놓은 코 정말 빼고 싶은 순간
열렬히 사랑하는 애인과도 백의 백이 다 좋기만 해서 연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마음에 썩 들지 않는 부분도 있어 가끔은 의견 충돌도 생기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으니까 행복하니까 연애를 하는 것이겠지. 나의 모닝런도 좋은 점이 정말 많아 사랑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이 백 프로 천 프로 행복한 마음으로만 임하는 것은 아니다. 세게 끼워 놓은 코를 정말 확 빼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우습고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 모든 것이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이라는 것.
아무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관건인 '아침'달리기 '모닝런'이다 보니 이른 아침에 또는 누군가에겐 꼭두새벽일 수도 있는 시간에 일어나는 행위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저녁부터 사소하지만 그래도 꽤나 다양한 준비들이 있어야 하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잠을 적당한 시간에 잘 자야 하고 일찍 일어나기 위해 머리도 마음도 약간의 긴장과 다짐이 필요하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저녁의 준비들, 어느 순간 저녁에 잡는 약속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먼저. 저녁에 약속이나 회식이 생기면 가서 음식도 늦은 시간까지 많이 먹게 될 거고 늦게 돌아오면 그만큼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어질 거고 혹시 술 약속이라도 생기면 상황이 아주 많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저녁에 잡는 약속들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퇴근한 후에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보니 저녁 시간 말고는 즐거운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주말 말고는 없는데 어떡하나. 그래서 조금씩 조절하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저녁에 최대한 일찍 만나 적당한 시간에 귀가해서 내일 출근 준비를 어느 정도 해 놓고 12시 좀 넘은 시간엔 꼭 잠자리에 드는 것 까지를 목표로.
두 번째. 저녁에 먹는 음식들도 부담스럽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편이라 원래 오후 시간엔 커피를 마시지 않긴 하지만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 위에 부담이 많이 가는 양의 음식들과 나트륨, 기름진 음식 등등 소화가 쉽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몇 배로 힘들어지더라. 위에 부담이 갈 만큼의 음식을 먹고 나면 자는 내내 소화하느라 깊은 수면도 어려워 아침에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곰 세 마리 등에 업고 일어난다. 그래서 요즘은 저녁도 시간과 양을 조절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폭식하고 싶은 날은 컨트롤하기 어려운 날도 많다.
세 번째. 밤에 잠이 드는 순간도 혹시나 아침에 알람을 듣지 못할까 늦으면 어쩌나 조금 긴장을 한 상태로 잠에 들기 때문에 가끔 중간중간에 깨기도 한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모닝런 뛰러 오시는 분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다. 본인 스스로의 러닝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크루가 같이 뛰다 보니 혹시나 피해를 끼칠까 봐 그렇다.
그리고 일찍 침대에 누웠음에도 어떤 노력에도 잠에 쉽게 들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정말 걱정도 되고 잠은 오지 않고 힘들어진다. 한 마디로 잠자는 것은 망한 날이다. 쪽잠 자고 뛰러 가던지 러닝을 포기하던지..
네 번째. 이제 아침이 오면 대망의 난코스 '일어나기, 깨어나기'가 있다. 일어나는 것은 잠자는 것 보다도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모닝런을 해내는 것의 절반 이상이 '일어나기'일 것이다. 나름 이것저것 따져보고 가장 적당히 준비될 수 있는 시간으로 맞춘 알람인데 왜 매일 울리는 알람은 이리도 원망스러운지... 5분 간격으로 여러 개 맞춰 놓은 알람 중 첫 알람에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잘 일어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5분 간격 알람이 두 번 정도는 울려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알람을 껐다면 그때부턴 내 몸과의 협상에 들어간다. 왜인지 모르게 다리가 좀 아픈 것 같고 어제 무리해서 뛰었는지 발목도 정상 상태가 아닌 것 같고 목도 좀 칼칼한 게 밤새 감기 기운이 생겼나 싶고 오늘 이 컨디션으로 뛰러 나갔다간 하루 종일 정상 컨디션으로 업무를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드는데 꼭 뛰어야 할까... 날씨도 좀 좋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등등
다섯 번째. 혼자 뛰는 날은 어차피 애초에 혼자 뛰기로 마음먹은 날이라 큰 영향이 없는데 러닝크루원들과 같이 뛰기로 한 모닝런 날에는 모두의 참석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모닝런 신청한 분들의 숫자를 본다. 자기 전에 참석 버튼을 누른 참여자들 중 절반이 사라지는 날이 재미있게도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분명 밤엔 '오 내일은 이만큼이나 많이 같이 뛸 수 있네' 해서 신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갑자기 혼자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힘이 쑥 빠지기도 한다. 그런 날엔 좀 신나고 긍정적인 밝은 가사와 비트가 많은 노래를 들으며 부스팅을 해본다.
여섯 번째. 지금은 퇴사를 해서 조금 여유가 있지만 회사를 다닐 때 5분이 소중한 아침에 달려야 하는 모닝런은 시간적인 여유 부분에서 쉽지 않긴 하다. 모닝런을 위해서는 두 시간 이상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30분 정도 달리기를 하고 나서도 여유 있게 출근 준비를 하고 갈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할 땐 혈액 순환이 싹 되면서 좋은 에너지들도 생기고 부기도 빠지고 몸도 좀 풀려 개운하지만, 씻고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 한잔하고 아침 업무를 보고 이제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좀 완화되는 점심 먹기 직전 11시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난 직후인 오후 한두 시쯤이 되면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정말 견뎌내기 힘든 극도의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 15분 정도라도 잠깐 졸고 나면 정말 개운하긴 한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더 많으니 문제다. 그런데 이 마저도 좀 꾸준히 하다 보니 몸도 적응을 하는지 그 괴로운 졸음의 순간을 극복하는 나름 노하우가 생기기도 하고 처음에 그렇게 몰려오던 극도의 졸음은 점점 강도가 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