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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 Aug 29. 2024

아침을 달리는 사람들.

아침은 그리고 아침의 사람들은 참 멋지다.

 '아침은 그리고 아침의 사람들은 참 멋지다.'


마치 매일 똑같은 출근길, 출근 시간에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늘 똑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나가니까 매일 같은 시간 거의 똑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기억하려고 한 명 한 명 보면서 뛰는 것도 아닌데 매일 마주하니 눈에도 익고 기억에도 남는다.

모 대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 강아지와 같이 뛰는 아저씨,

모자는 푹 눌러쓰시고 뛰었다 걸었다를 여러번 반복하시는 아주 마른 체형의 아주머니,

배낭 하나를 작게 매고 라디오를 크게 들으시면서 맨발로 흙길을 왔다 갔다 걸으시는 아주머니,

우리 말고 반대쪽 구석에서 다 같이 몸을 풀고 파이팅을 외치며 뛰는 러닝크루,

항상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강도 있는 달리기를 꽤나 오래 하시는 누가 봐도 프로페셔널 마라토너 느낌인 몇 분 등등..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지키며 저마다의 페이스는 달라도 아침을 깨우는 사람들이다.


우리 크루 안에도 매일 아침 고정멤버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온다. 사실 아침 달리기는 시간대가 쉽지 않아 저녁 정기벙만큼 참가 인원이 많거나 그만큼 다양하진 않지만 그래도 꽤나 다양한 직종, 연령, 생각, 생활패턴을 가진 분들이 매일 바통터치를 해 가며 모닝런을 시도한다.

꾸준히 계속 나오셔서 아침마다 나와 같이 이 시간의 디폴트 값을 지켜주시는 든든한 분들도 있다.

 사실 러닝 크루에 들어오기 전 나는 딱히 소셜링 모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재작년 겨울쯤인가 괜히 새로운 뭔가가 필요해 한 3-4개월 어느 정도 알려진 독서모임에 참석했던 것 말고는 운동도 혼자 하고 배우거나 공부해야 할 것이 있다면 더 혼자, 암암리에 하고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도 그 성향 자체가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래서 그때는 회사 사람들, 주말마다 시간을 같이 보내는 내 동생, 가끔 만나는 친구들 외에는 크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어서 늘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나와 생활 패턴, 업무 패턴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소통하고 만나면서 지냈던 것 같다.

 러닝크루에 합류하고 여럿 사람들과 달리면서 오가는 이야기 속에 정말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생활패턴들이 있으며 또 훨씬 재미있는 관점의 생각들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알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처럼 무역 회사에서 시차 맞춰가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내야 하는 크리에이터, 밤샘 작업이 유난히 많은 디자이너, 개발자, 요즘 이것저것 이슈가 많은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직종 종사자 등등 그러다 보니 '아 요즘 일이 많고 힘들어서 러닝 참석하는 게 쉽지가 않네요' 한마디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어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떤 이슈로 요즘 야근이 잦은 지 야근 분위기나 그쪽 업계 근무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연령대의 어떤 사람들이 주가 되어 근무하고 있는지 등

그렇게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곳의 이야기들을 간접적으로 듣고 느껴보기도 하면서

작지만 큰 세상을 한번 더 알아가며 러닝을 한다.

그리고 매일 사소하게 느끼는 소소한 새로움들이 즐겁고 신선하다.

 여기서 모닝런의 특이점은 달리기를 하러 아침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관점도 생활패턴도 다르지만 모닝런에 하루라도 나와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뭔가를 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남다른 의지로 꾸준히 이 습관을 이어가 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목표가 되었던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고이고이 예쁘게 한번 꾸려가 보겠다는 의지로 아침을 시작한 사람들임은 분명한 것 같다.


 무심코 뛰면서 같은 시간 만나게 되는 분들을 매일 보고 있으면 나름대로의 이야기들이 대충 보이는 것만 같은 분들도 있다. 물론 전혀 근거도 없고 어처구니없는 내 개인적인 상상의 나래인 것은 확실하다.

몸이 많이 아프시거나 큰 수술을 하고 불굴의 의지를 다지며 회복 중인 것처럼 보이는 분,

아침마다 강아지 두 마리 데리고 출근 전 산책시키러 오신 분,

바쁜 일상에 지쳐서 또는 개인적인 일들이 있어서 생각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 보이는 분,

우울함을 극복해 보려 어떻게든 아침에 나와서 걸어라도 보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날은 남편 분인지 가족과 크게 싸우고 너무 속 시끄러워서 나왔다고 아주머니 두 분이 걸으시면서 하시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은 적도 있다.

 모두 뜬구름 잡는 상상하길 좋아하는 나의 엉망진창 상상일 뿐이지만 여기서 내가 발견한 모닝런의 특이점 두 번째는 아침 시간에는 저녁과 다르게 통화를 하거나 크게 이야기를 하면서 걷거나 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마 고요한 아침 시간을 이제 막 깨어난 순수한 아침 공기와 함께 온전히 나를 위해 만끽해 보려는 아침형 사람들의 의지가 아닐까. 나를 위해 버거운 기상 시간도 이겨내고 나온 걸 아니 서로 그 시간만큼은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조용하고 따뜻한 배려들이 느껴지는 건, 이것도 나의 이상한 상상인 것일까.

그러기엔 나는 매일 느껴지는 데 말이다.

물론 바쁜 아침 시간대에 이러쿵 저러쿵 통화나 하고 있을 사람이 없는 시간이긴 하다. 하하.


 아침에 있는 그대로 광합성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 시간 만으로 받는 힐링도 분명히 있다. 저녁 시간엔 퇴근하고 나서라 아무리 지쳐있고 아침에 한 화장이 녹아내렸어도 화장도 머리도 예쁘게 남아 있는 시간이지만 아침엔 정말 눈곱만 떼고 고양이 세수하고 나오기 때문에

화장은 고사하고 눈썹도 이부자리에 그대로 남겨 두고 나온다.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평하게 민낯으로 나오는 이 시간은 예쁜 우리의 겉모습 보다도 아침 햇살, 풀벌레 소리, 선선한 바람 등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연과 아침이라는 이 시간이 주인공, 그 속에서 달리고 있는 우리는 두 번째, 이 또한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어떤 긴장감도 필요 없이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뛴다는 것은

이런 아침의 특별한 에너지를 잠깐이라도 느끼기 위해

각자의 삶의 무게와 색은 달라도 나와서 함께 작은 의지를 다져보는 사람들은 고요한 멋이 있다.


그리고 그런 멋진 아침은

조금 더 긍정적이고 밝은 하루를 살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 담긴 소중한 하루다.


아침은 그리고 아침의 사람들은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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