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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Jul 21. 2024

[소설] 담장 위 하얀 찔레꽃 12화

- 실패가 준 선물

“엄마?”

“성우니? 우리 아들이야?”

엄마는 목이 쉬어 있었다. 엄마가 10년은 늙은 것 같은 모습으로 성우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할머니가 성우를 만날 때 하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여긴 어쩐 일로?”

성우의 질문에 대답은 않고 미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됐어… 됐어… 다 괜찮아. 엄마가 미안해. 성우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떨고 있었다. 성우가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 미연이 애써 감춰온 모습이었으리라. 성우는 엄마가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주현도 그것을 느꼈는지 한쪽으로 미연을 부축하고 계단에 앉아 쉬게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미연이 제정신이 들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너희들 밥 안 먹었지? 밥 먹으러 가자.”

성우는 다시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아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엄마는 성우를 볼 때마다 밥 먹었는지를 물었다는 것을.

“배 고파. 짜장면 사주세요.”

“좋지. 이 근처에 진짜 맛있는 짜장면집 있어. 가자.”

성우와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그날 성우 엄마 미연은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들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없다.      

수학 재시험에 대한 소문은 일주일 만에 사그라들었다. 바짝 다가온 체육대회 준비에 아이들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학급 전체가 참여하는 치어리딩과 각종 예선전들로 아이들은 시끌벅적했다.


체육대회 준비로 소란한 틈에 영어 말하기 대회도 실시되었다. 시청각실은 100여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과 친구들을 응원하러 온 학생들이었다. 본선에 든 자기 반 학생들을 보러 온 담임선생님들도 있었다. 멀리 성우네 담임선생님도 보였다. 한 반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데 12반에는 본선에 든 학생이 셋이나 된다며 다른 담임교사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성우는 자기 차례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었고 주현은 벌써 발표를 하고 난 후라 평온한 모습이었다.      

성우가 조심스럽게 연단으로 올라가 준비한 연설문을 발표했다. 성우가 선택한 주제는 <실패가 나에게 준 것>이었다. 학생들은 성우가 예전의 자신만만하던 모습이 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겸손해진 성우의 표정에는 이전에는 없던 지혜가 깃들어있었고 그가 하는 말도 진정성이 느껴져 묘한 감동을 준다고 생각했다.     

“최우수 축하해.”

주현이 성우에게 말했다.

“우수 축하해.”

성우가 주현에게 말했다. 성우와 주현이 동시에 뒤따라오는 재영이를 뒤돌아보았다.

“장려 축하해!”

두 사람은 박수를 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재영이가 밝게 웃었다. 재영은 고등학교 들어와서 대회 상장을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셋이 어울리게 되면서 얼떨결에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대회를 준비하게 되었던 것이 뜻밖에 상까지 받게 되었다.

학교 담장이 끝나는 곳에 축대가 있었다. 주현이 축대 위를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얼굴에 그늘을 만든 후 축대 위에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찔레꽃, 저 꽃이 찔레꽃이래. 물 주는 사람도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피지? 예쁘지 않아?”

그때 재영과 성우가 동시에 뛰어올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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