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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Jul 14. 2016

물구나무서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익숙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또 하루의 밤을 견디고 나서야 알았다. 그대의 전화가 오지 않는 밤, 녹음된 목소리를 몇 번이고 듣던 밤.

옛날이었다면 테이프가 다 늘어졌을 때까지 나는 멍하니 앉아 턱을 괴고 그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대가 말을 걸 때면,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나는 응? 하고 대답을 건넸고 그대가 내게 질문을 건넬 때면 파스스 부서지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대의 질문도 숨소리도 모두 외운 밤에는 오로지 나와 나와 나밖에 없었고 그대는 숨소리 하나조차 그대가 아니어서 더 서러웠다.

종종 그대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세상이 뒤집혔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상은 느리게도 한 바퀴를 돌아서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기댈 곳도 없이 그저 아찔하기만 했다.

나 아닌 세상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나는 몇 번이고 나의 세상은 그대라고 말했는데,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아기새마냥 비에 젖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세상 밖 어딘가에서 얼어죽어가고 있었다.

그대야, 멍하니 그대의 이름을 부르면 금방이라도 대답할 것 같은데 여전히 세상은 나를 배제하고서 태양 주위를 돌았고 지구를 잃은 달은 갈 곳을 잃은 채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구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대.

그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나, 사실 달은 영영 지구의 뒷모습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지. 부서지는 모래를 발톱을 세운 바다를 보고 싶어 나는 또 달리지만 푸른 바다는 마냥 멀어지기만 한다 발톱을 감춘 채.

가지 말라는 말 대신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돌아봐달라는 말 대신에는 그대의 이름을 부른다.

그대야, 그대는 나의 세상이요 별이요 우주니, 숨조차 멎은 밤 내 그대 이름을 우는 것은 삶을 갈망하는 방랑자의 마지막 물방울이라 여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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