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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Jul 31. 2016

속초행

行路難

하얀 화선지 위에 무심코 떨어뜨린 먹물 한 방울이, 서서히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연애처럼.

너를 알고 싶어 시작한 이야기는 네 친구들을, 네 가족들을 하나둘 알아가고 빈 페이지 하나하나 글씨들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너의 책에도, 나의 책에도 밤을 새워 쓰인 이야기들. 아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책장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놓았다 가까운 이들에게 토막토막씩 소개하고는 했다.

새벽 4시, 맞추어놓은 알람 대신 지독한 악몽으로 잠에서 벗어났다. 투명한 창 너머로는 짙은 남색의 비단이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 흘려보내려는 듯 그렇게 한참을 샤워를 했다. 화장을 하고 5시 반, 네 가족들과 같은 차를 타고 속초로 출발했다. 차는 지독히도 막혔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네 눈동자를 마주하고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내 욕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참을 도로 위에서 철로 만든 거북이가 되어 갇혀있다가 풀려났다. 너를 만나고, 가족들이 신경쓰여 미처 너에게 다가갈 수 없을 때 우리는 포옹을 했고 목소리로 한참을 그렇게 녹아 있었다.

둘만 남은 우리의 거리는 조용했다. 말들이 섞이든, 경적소리가 시끄럽든, 우리의 거리는 조용했다. 서로의 목소리 외에는 소리가 아니었던, 마주보던 시간과 손을 잡고 같이 걷던 시간. 종종 고개를 돌려 네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추던 시간. 너 없던 시간 지독히도 게을렀던 시계는 바지런히도 달렸고 하나의 해가 진 자리에 하나의 해를 다시 떠올렸다. 너를 보내야 할 시간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게 싫어 네 옆으로 더 파고들었고, 한참을 우리는 안고 있었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인 것처럼, 우리의 처음이 그랬던 것처럼. 거리를 걷자면 사람들은 주머니괴물을 잡기 위해 다들 핸드폰을 들고 걷고는 했다. 우리는 마주보다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나는 손에 꽃을 들었는데."

내 손을 잡고 있던 네가 문득 던진 말에 나는 또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봤다. 너는 맑게도 웃었고, 나는 그런 네가 예뻐 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우리는 연신 서로의 사진을 찍었고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했고 서로의 얼굴을 담았다. 너무 한낮에, 손을 잡고서 우리는.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고 출발하기 전까지 너는 창문 너머에서 몇 번이고 하트를 그렸다. 사랑해, 닿지 않는 소리를 몇 번이고 주고받았다.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너를 등져야 하는 것이 못내 서러워 한참을 뒤돌아봤다.

휴가의 마지막이니 역시 차는 막히겠지. 갈 길은 까마득히 멀고 또 길어서 너는 걱정을 했다. 늦게 도착하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혼자인 게 또 자꾸만 떠오를까 오직 그것이 걱정이었다. 사랑함에도 가까이 두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하지 않게도 당연해서, 원망만 남겨둔 채로 또 가지 않는 시계를 탓할까 그것만을 걱정했다.

그대야, 우리가 갈 길은 여전히 알 수 없고 함께임에도 또 문득 외롭고,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릴 때조차도 걱정할까 지칠까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삼켜야 할, 익숙하게 낯선 조금 더 많은 날이겠지. 나는 나보다 그대를, 그대는 그대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우리는 그런 날들을 보내겠지.

시간이 약이라는 흔한 말 대신, 우리는 영원보다 조금 긴 찰나일 뿐이라 스스로를 위로하겠지만. 우리의 영원은 또 찰나보다도 짧아서 어디로 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이 그저 서로에게로 무한정 떨어질 뿐, 그대야, 그대야, 마냥 그대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언젠가 이 안개도 끝이 나겠지.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종착지를 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 그 사이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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