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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타 May 24. 2016

아침이 할퀸 흔적

마지막 봄, 첫 여름

잠에서 깨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고 블라인드를 걷었다.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고, 불투명한 창문 건너 투명한 창문에는 빗방울들이 맺혀 떨어졌다.

아침이 내 심장을 할퀴고 있었다. 비는 그치지 않으리라 말하는 듯 거세게 창을 내리쳤다.

막연한 상처에 뒤로 물러서 창문을 닫았다.


벌써 5월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이상하게도 더웠던 5월의 더위도 오늘로 인해 한풀 꺾일 것이다.

오늘의 비는 봄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그리고 여름의 처음을 알리는 소리겠지.

머리를 말리다 말고 창문을 열었다.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은 다른 비를 생각하겠지.

나가기 싫었다, 그저 막연히 창문에 코를 대고 내리는 비와 지나가는 우산들을 보고 싶었다.

나와는 관계 없는 풍경일 때 더 아름다운 것들.


우산을 쓰고 건물 밖으로 나서는 걸음, 양말을 신지 않은 발에 빗물이 스밀 때마다 괜히 울적해졌다.

귓가에서는 정준일의 USELESS가 흘러나왔고, 나지막히 따라부르며 걷는 오르막길엔 수많은 뒷모습과 수많은 우산들과,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톡, 톡, 탭댄스를 추는 작은 방울방울들.


이 쓸모없는 놈 쓸모없어지면 
나는 하나도 쓸모없는 놈인가요
나 필요 없어지면 
필요 없는 놈인가요
그럼 난 살아갈 가치도 
꿈도 없는 놈인가요
거울 뒤에 숨은 너에게 묻네

마지막, 혹은 그 마지막의 마지막, 거울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너를 생각하며 애써 웃는 마지막 봄에.

봄은 타죽을 정도로 따뜻했고, 그 시간에 너를 안고 있어 행복했다.

너 없는 두 번의 여름, 두 번의 가을, 두 번의 겨울, 그리고 한 번의 봄에 바쳐.

내 아침에 얻은 흉터를 보낸다. 빗물이 할퀴고 간, 아직 붉은 나를 보낼게.

여름의 처음이 그친 비와 함께 다가온다. 안녕, 안녕.

우리가 처음 만났듯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함께 할 단어를 함께 보내니, 그대 하염없이 어여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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