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수프
현실은 비의로 가득하다. 갑자기 존재하고 어느 날 사라진다.
한 달에 한 번 강이랑 선생님과 <그림책 수프>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림책으로 만난다. 최근 3개월 동안 안녕달의 <<별에게>> 와 이수연의 <<비가 내리고 풀은 자란다>>을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번 7월에는 그림을 그린 키티크라우더의 <<서부시대>>에 이르렀다. 나는 그림책을 통해 내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가야 할 방향을 알아차리거나 점치기도 한다. 어느 때는 무의식 속에 나의 자아, 어린이성을 깨닫고 위로받는다. 글과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적 경험을 통해 나와 세계가 이어진다.
수많은 별을 만나 여기에 이른 나는 누군가에게 별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돌숲을 열었다. 3여 년 시간 동안 비는 무작위로 쏟아져 내렸고 결국 오늘이 되었다. 오늘 프로그램 신청자는 뭔가 새로운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서부시대>>를 읽어 주신다.
애리야, 너는 예수가 아니야.
살수록 뾰족하게 와닿는 말.
목사도 사람이야.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으로 살고 싶었나 보다.
장사하면서 자꾸 하소연하면 안 돼요.
그럼 죽으란 말인가.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처럼 살아도 안 되고, 사람으로 살 수도 없는 삶.
우리는 언제나 서부시대에 살아간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이치에 합당한 시대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우연을 과장하거나, 무법자가 판치는 시대에 살기 위해 인간은 무수한 가면을 쓰고 위장을 한다. 대의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선의와 이상은 현실과의 괴리로 뜻을 잃는다. 언제나 가혹한 현실은 모두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남긴다. 그동안 썼던 가면은 다 거짓이고 상황 앞에 드러난 하나의 민낯만이 한 개체의 본질일까. 나는 그것이 늘 궁금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살기 위해서 자행하는 무관심을 목도한다. 어쩌면 살기 위해서라는 변명도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 보고자 내 편의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상황 앞에서 한 번은 살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반복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잘 벼려진 칼날이 된다.
무수한 사람이 내게 오고 간다. 돌멩이로 수프를 끓여 다 같이 배불리 먹는 마법사 같은 삶을 꿈꾸었다. 물론 나를 끊어낸 사람도, 내가 끊어낸 정도 있다. 가족이나 작은 공동체부터라도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유지되기 힘들었다. 가족 안에서는 고맙게도 남편이 큰 울타리가 돼주었고, 나는 돌멩이 수프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너른 마음을 풀어헤쳤다. 가끔 본전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는 덕을 쌓는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얘는 덕 쌓느라고 책방을 한다며 코웃음 치던 엄마가 떠오른다. 아마 엄마는 니 안위가 먼저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아내로 사는 것. 내게 할당된 몫만큼 먼저 살아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다. 나의 이상으로 남편이 희생하고, 아이들이 희생하는 상황까지 번진다고 생각하면 내가 하는 일은 망망대해에 길을 잃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배처럼 아득해진다. 도대체 나는 왜 마법사를 자처하는가.
한 번은 모른 척해보았다. 돕고, 희생하고 싶은 마음을 접어 보았다. 연민과 다정을 시험해 보았다. 그랬더니, 견딜 수가 없었다. 안 하는 것은 더욱 괴로웠다. 안 하는 것은 때마다 괴로웠는데, 하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므로 하는 게 더 내 마음이 편하다.
깜냥만큼 하되, 예수도 부처도 신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번 나의 깜냥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득도하고자 마음먹는 것이 허무맹랑한 것이고 오만이다. 일희일비로 끊임없이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것이 내 깜냥이다.
<<서부시대>>는 “사냥 나간 사람은 자리를 뺏긴다”라는 프랑스 속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그림책이라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사냥을 한다. 그 사이에 나의 자리란 사라진다. 하물며 주변인들에게조차 내 자리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에서 과거를 짐작하고 미래를 예상한다. 어차피 우리의 자리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끊임없이 대체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넓은 대지에 나의 자리는 어딘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기 위해 수많은 일을 한다. 돌멩이 수프라는 책방을 갑자기 열고, 그림책 수프라는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모객의 어려움으로 늘 위기에 봉착하지만 북토크를 열고, 주말에는 가족 무료대관을 하고, 방학에는 더 일찍 문을 열고, 어린이 멤버십으로 한 어린이라도 더 받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안 받기도 한다.
내가 일한 만큼 주어지는 보상은 꽤 추상적인 데다 주관적이고 자의적이기까지 하다. 보상이라는 것이 내 기준에 한 번도 만족스럽게 채워진 적은 없었다. 나는 이상과 보상의 균형을 희구하지만 영원히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번씩 생각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먼저 남에게 도움이 되면 한다. 남에게 이로운 것이 내게도 이로운 일이다. 충만함과 자부심으로 하루하루 가게 문을 연다. 모를 일이다. 오랜 시간 뒤에 보상이 따라올지도, 이상이 맞춰질지도.
앞으로도 여러 탈을 쓴 무수한 얼굴과 상황이 닥쳐올 것이다. 늘 안 괜찮다가 잠시 괜찮고, 괜찮은지도 모르는 사이에 안 괜찮은 일이 반복된다. 죽고 사는 것만이 횡행하는 전쟁 같은 삶이라고 일갈한다. 비의로 가득 찬 일상 속에 상징과 기호로 삶의 의미를 알아내려 한다.
그러다 문득 이 세 권의 그림책을 계속 번갈아 본다. 사실 세 권의 책은 모두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의로 가득 찬 그림책은 순간순간 내 마음속에서 꿈틀댄다. 어쩌면 그림책이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림책 한 권을 알아가기엔 두 시간은 부족하고, 그림책을 펼칠 때마다 달리 보이는 게 그림책의 묘미니까. 까마득한 현실은 관념 투성이인데, 이야기로 나눈 그림책이 훨씬 더 실제적이다. 나는 그림책을 통해 여전히 다르게 살고 싶은 나를 위로한다. 나는 더 내어줄 거야. 집이 되어줄 거야. 오고 가는 것을 받아들일 거야. 이런 나를 내가 어루만져준다.
자신의 사랑의 방식은 완벽함도 정성도 아닌 성실함이라고 말하는 이은경 작가와 달리기로 글을 쓰고 인생을 알아가는 하루키의 삶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각자가 생존하는 방식은 다 다르지만 살고자 하는 바람은 닮아 보인다. 내가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상대도 사는 것이다.
3개월 동안 나는 여러 변곡점을 지났다. 예전보다 고난을 빠르게 알아차렸고, 흘려보냈고, 끊고 맺었다.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견뎌내며 불안하기도 했다. 결심이 서면 감당할 자신이 생긴다. 내 자리에 또 다른 기쁨이 차지하고, 인생의 비의는 반복된다.
최근에 타인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작가님이 그 또한 투자라는 말에 무릎을 탁 쳤다. 생활 속에 나의 선의는 결국 나를 위한 투자다. 더 많이 베푼다. 더 크게 축복한다. 모든 투자가, 종목이 내게 돈다발을 안겨다 주진 않는다. 세 종목 중에 한 종목만 터져도 성공한 투자다. 어쩌면 같은 섹터 안에 예상치 못한 손절까지 하면서 내상은 꽤 클지도 모른다. 가산이 흔들릴 만큼 외부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또 투자를 하고 감당하며 기다린다. 투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이어진다. 반복되는 인생의 비관 앞에서 나의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다.
무더위가 이어지다 비가 내린다. 비는 여전히 적당히 내리지 않는다. 하루에 수십 번이나 쏟아지다 쨍하다 쏟아진다. 제멋대로 비 앞에서 나는 멈추거나 뚫고 가거나 우산을 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존재하게 되었지만 수많은 우연 속에 나의 선택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물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진다. 처음처럼 마지막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산다는 것을 의지한다.
세계의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포경선들은 마침내 나란히 정박하여 조용히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목수와 통장이들이 내는 소리가 역청을 녹이는 불꽃과 풀무 소리와 어우러져, 새로운 항해가 준비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난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허먼멜빌 <<모비딕>> 120쪽, 작가정신
한 번은 내게 손님에게 하소연 하지 말고, 힘내서 하라는 친구가 문제집을 주문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나보고 무한목숨이라고 한다. 자신은 지금 간당간당하게 한 목숨만 있다기에, 조금은 고소해하며, 애정을 담아 다시 재생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한 달 동안 선생님과 나는 또 한 차례 비가 지나갔음을 함께 축복했다. 어떤 시대에서든 우리는 살아왔다. 우리는 새로운 별과 함께 또 나아가야 한다. 다음 폭풍우 안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어떤 길이든 아마도 살아가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조금은 단단해진 발걸음을 한 발 내딛는다. 강이랑 선생님은 8월 <그림책 수프>에서 함께 나눌 그림책으로 백희나 작가의 <<해피버쓰데이>>를 지정하셨다.
낮볕이 지나간 창 밖에는 회색 적란운이 아파트를 휘감고 있다. 자주 흔들리고, 급격히 모습을 바꾸는 자연을 망연히 바라본다. 작달비가 멈춘 사이에 땅을 뚫고 살아남은 매미가 지질리게 소리를 내지르는 낮에 돌멩이 수프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책을 보는 어린이 속에서 나는 문득 사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다시 확인한다.
글을 쓰는 지금이 제일 불행하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비감하며, 나는 매일 돌멩이 수프와 집을 오간다.
그림: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