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눌하고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XYZ. 얽힘. 편의점 키오스크. 인류의 노동과 혁신적인 미래, 그로 인한 부가가치 창출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써야 할 것 같다. 듣기만 해도 인건비를 혁신적으로 감소시켜 줄 최신 테크놀로지 같은 느낌이다. 무인 키오스크는 경제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것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지 제법 되었다. 점주와 직원간의 갈등,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인건비, 저렴한 렌탈료. 사람 직원의 모든 일자리를 순식간에 빼앗아 버릴 기세다.
편의점 점주의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한 기술의 발전이겠지만 편의점 점주가 아닌 나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 편의점 직원의 관점이 아니다. 그냥 미래를 상상하기 좋아하는 아저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알다시피 아직은 대부분의 편의점이 키오스크를 채용(?)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상용화되서 편의점을 직원 대신 키오스크가 점령한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필연적으로 노인이 많아진다. OECD기준 1인당 출산율 0.92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6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7.4% 감소했다. 많은 비중의 사회 구성원이 노인이 되는 세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국가로 접어든 일본의 상황은 어떤가?
로손이라는 일본의 편의점 브랜드는 고령화 흐름에 맞춰 간호 상담 창구 서비스를 편의점에서 선보이고 있다. 전국 11곳 점포에서 사회 복지 법인과 연계하여 전문 인력이 간호와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간호와 연관된 제품을 편의점에 비치하여 매출 증가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물론 노인들을 배려한 경영 전략은 아니다. 편의점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에 등장한 차별화 전략이다. 하지만 그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혀 들었다는 점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은 인건비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편의점 키오스크를 통해 의도치 않게 최소한의 대화마저도 말살하려 하지만 일본은 오히려 편의점에서 많은 대화가 일어나게끔 유도한다. 옆나라 일본의 노인들은 편의점에 “대화”를 하러 간다. 일본을 본받자는게 아니라, 우리보다 일찍 고령 사회에 접어든 국가의 사례를 한번 체크해보자는 것이다.
기계가 사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들끼리 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인간성을 잃을 것이다. 키오스크를 통한 인건비 절감? 산업과 경제의 변화? 좋다. 하지만 편의점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먼 훗날 노인이 될 우리가 못해도 이틀에 한번 정도는 방문해야 할 곳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듯이, 미래의 노인들은 1인가구의 비중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편의점에서조차 일말의 대화 없이, 차가운 스크린을 터치해서 물건을 구매하고 다시 혼자인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세상. 너무 잿빛이라 우울하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 스마트폰을 알려 달라는 아버지와 귀찮아하는 딸의 말다툼이 발생하듯이, 키오스크로 노동력이 대체된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못해 헤매는 노인들과 업자들간의 갈등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좀 어렵긴 하다. 키오스크.
기계 앞에서 스마트하고 철두철미하게 메뉴를 척척 눌러서 음식을 받거나 물건을 사는 것 좋다. 나쁘지 않다. 어려운거야 배우면되고 익숙하지 않은건 적응하면 된다. 하지만 씁쓸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간에 최소한의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식사 하셨어요? 날씨 덥죠? 담아드릴까요? 어눌하게 라도 인사를 건네고, 잠시라도 눈을 맞추며 대화하길 바란다.
시간이 흐르면 고령사회가 될 것이 지구에서 가장 확실한 대한민국, 우리만큼은 소소한 일상의 상호작용이 넘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