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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아웃사이더 Jan 31. 2022

집(home)을 찾아 집(house)을 떠나왔습니다

외국생활은 당신의 생각만큼 이상적이지 않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신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에는 외국에 사는 동양인 요리사가 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적진에 들어가서 맹독성 음식을 먹고 죽음의 위기까지 맞닥뜨리는 화면이 나온다. 그리고 한 경관이 그 요리사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동양인 요리사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속 네스카피에 경위


"I'm not brave. I just wasn't in the mood to be a disappointment to everybody. I'm a foreigner you know."

(전 용감하지 않아요. 그냥 모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알다시피 난 외국인이잖아요.)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나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방인이 겪는 고충을 담아낸 3줄의 대사. 이 대사를 보는 순간 나의 지난 3년의 대만 생활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방인의 신분이 주는 외로움에 발버둥 치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흔히들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해외에 가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꿈꾼다. 또한 해외로 나가서 살고 있는 교포들을 보면 흔히 돈이 많거나 자유로운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땐 위와 같은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앞에서 말한 재력이 충분한 교포들과는 꽤나 다른 이유로 한국을 떠나왔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집(Home)을 찾아 집(House)을 떠난 사람이었다.


home과 house는 한국어로는 '집'이라는 말로 다 표현이 되지만 영어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영어에서 home은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족 또는 안식처를 의미하는 말이고, house는 그저 잠을 자고 쉴 수 있는 건물 자체의 집을 의미하는 말이다. 


 말하기 어려운 수많은 이유들로 나에게 한국의 집은 home이 아니라 그저 house였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만이 줄 수 있는 안식처의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렇게 채워지지 못하는 공허한 마음으로 한국에서 20여 년을 살아오다가 결국 나는 나의 집(home)을 찾기 위해 집(house)을 떠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가까워보이지만 막상 알고 보면 매우 먼 나라, 대만이었다. 


 만 23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 시작하게 된 해외 생활. 처음에는 전혀 순조롭지 않았다. 외국어가 주는 소통의 문제, 한국과는 전혀 다른 직장문화,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주는 외로움 속에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특히 힘들었던 시기는 한 달 40만 원의 3평짜리 원룸에서 지내던 10개월의 시간이었다. 여기서 내가 갑자기 죽어도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며, 침대에 가만히 누워 여기가 내가 찾던 집이 맞는지 수많은 고민으로 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런 공허한 마음을 억지로 채우기 위해 이른바 데이트 어플이라는 걸로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중 누군가는 나와 좀 더 가까운 관계가 되길 바랬지만 단순히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남의 호의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 모를 우울감이 가득한 10개월 동안의 사진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선택한 결과였기에 이렇게 언제까지 우울감 속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매일 카페에 가서 중국어 공부를 계속했고, 우울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그 시간을 버티어내니 앞에서 겪었던 수많은 문제들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렇게 내 생활과 목표에 충실해지고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존감도 다시 회복이 되면서 나의 공허하고 불안정했던 마음도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그렇게 내 삶에 충실해지니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찾아 헤맸던 이전과 달리, 좋은 사람이 나의 곁으로 먼저 다가왔고 그게 바로 나에게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미래를 꿈꾸게 해 준 지금의 남자 친구 팅이였다. 그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었던 무한한 편안함 그리고 신뢰감을 팅이에게서 받으며, 내가 그토록 원했던 집(Home)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통스러웠던 약 1년의 시간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좀 더 성숙한 나를 만드는 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어리기만 했던 내가 그 시간들을 이겨내면서 나 스스로를 더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까지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나는 내가 그토록 원하는 안식처의 집을 찾지 못했으며 이방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외로움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이겨냈던 것처럼 나는 이 시간들이 언젠간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끝났을 때 그동안 내가 원하고 또 원했던 안식처의 집(Home)을 찾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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