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 19일 (19만 4680원)
1월 17일 - 19일 (19만 4680원)
알바를 하기로 한 공장이 애월이라고 해서 가까울줄 알았는데 버스로 가기엔 너무나 먼 곳이다. 통화 중 살짝 고민했더니 그 부근에 사는 직원이 있다면서 출근길에 픽업해주신다고 한다. 설마설마 했는데 퇴근길도 데려다주신단다. 꺄오.
사무실에 들러 통장, 신분증 사본을 넘기고 3일간 공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출입문에 지문을 인식한다. 전에 입었던 사람의 체취가 가득한 유니폼을 받아 입었는데 바지는 발목이 드러날만큼 짧고 상의는 몸에 조금 붙는다. 슬리퍼는 당연히 내 발에 맞을리가 없다. 흰색 머리망을 뒤집어 쓰고 공장에 들어선다. 컨베이어 벨트가 이어지는 포장실에는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포장실과 칸막이로 분리된 준비실은 화장품을 큰 대야째로 보관하는 창고와 이어져있다. 포장실이 어느정도 정돈되고 나니 알바들이 한 명씩 투입된다.
처음 하게 된 일은 탬핑 불량 때문에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 바디워시와 샴푸 뚜껑을 다시 손으로 꽉 조이는 일이다. 장갑을 끼긴했지만 요즘 다시 갈라지는 손가락 때문에 조금 신경쓰인다. 하지만 신경을 다른데로 돌릴 새도 없이 컨베이어 벨트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기계놈이 내 속도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계놈의 페이스에 맞춰가는 그야말로 닝겐의 기계화 현장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트레드밀이랑 비슷하게 일단 내 몸을 기계가 원하는 리듬에 맞춰 놓으면 그 뒤로 큰 노력이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단순히 반복되는 움직임은 잠을 소환해내고 결국 기껏 맞춰뒀던 몸의 리듬을 깨트린다. 그러면 외출했던 정신이 황급히 돌아와 깨어진 리듬을 되찾으려고 몸에게 다그친다. 몸의 리듬이 자리잡고 무너지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과정이 공장 알바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두 번째 일은 비욘드 화장품 세트를 완성하는 일이다. 토너, 에멀젼에 에센스, 크림, 샘플까지 있어서 라인에 붙어 한명씩 붙어 구성품을 채워넣는다. 다른 구성품들은 비욘드라는 브랜드명이 앞을 보도록 맞춰놔야하는데 나는 뚜껑만 보이는 크림이라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크림이 들어가는 자리에만 쏙쏙 채워넣으면 된다. 개이득이다 ㄲㄲㄲ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끝나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더 페이스샵 화산토 라인의 화장품 박스를 접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라인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단상자'라고 부르는 이 작은 박스의 밑면을 끼워놔야 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완성된 화장품을 쏙 넣고 뚜껑을 닫아 6개들이 박스에 다시 포장할 수 있다. 하루종일 움직인 손목과 손가락은 삐그덕대는데 컨베이어 벨트는 여전히 건재하다. 아 기계 파괴 운동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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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일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숙련된 몸뚱이의 활약으로 하루가 빠르게 흘러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시간은 어제보다 느릿느릿 흘러간다. 오늘의 임무는 아웃박스다. 라인의 끝으로 내려오는 화장품을 큰 박스에 정해진 개수대로 담고 테이핑을 하는 건데 라인의 끝이기 때문에 떠안게 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쉬는 시간이 아니면 멈추는 일이 없기에 중간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밀리게 되면 라인 중간에 있는 사람은 제품을 따로 빼내서 템포를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인 끝에서는 밀려드는 완성품을 부지런하게 재포장해야할 뿐 자기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기회 조차 없다. 라인 상류에서 화장품을 용기에 충전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텀이 생기면 라인 중간에서 빼놓았던 제품들이 다시 우르르르 하류로 내려온다는 점도 라인 끝에 있는 자에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루종일 라인의 끝에 서서 박스를 접고 재포장을 하고 테이핑을 했다. 내일은 상류로 좀 올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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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라인 상류에서 수분크림 뚜껑닫는 일을 했다. 꺄. 꽤나 뻑뻑해서 손목을 크게 두 번 반 돌려야 뚜껑이 굳게 닫혔다. 닫고선 크림용기를 뒤집어 까만 선에 맞춰두면 코딩기를 지나 제조년월이 찍힌다. 앉아서 하니까 체력이 확실히 덜 소모되는 듯하다.
어제, 그제는 그래도 입에 넣고 씹을만했는데 공장에서 주는 점심은 너무나 노맛이다. 오늘은 설탕을 쏟으셨는지 모든 반찬이 깜짝놀랄만큼 단 맛이다. 아침에 함께 오는 주임님 말로는 식대의 절반은 월급에서 나간다고 하시던데 이건 맛이 너무하다 싶다. 그래서인지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밑반찬을 싸오셔서 식사를 하신다...
오후에는 제조년월이 찍힌 화장품 용기 바닥을 확인하고 단상자에 넣는 일을 했다. 그래도 눈으로 뭔가를 확인해야해서 집중력이 올라간 것 같긴 하다. 공장에서 종이 박스를 무지 많이 쓰다보니 먼지가 엄청나다. 매 쉬는 시간에 물을 들이켜도 일을 하다보면 목구멍이 따가워진다. 8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면 2시간을 내리 일하고 10시 30분에 잠시 휴식을 갖는다. 화장실도 가야하고 물도 마셔야하는데 쉬는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여자분들이 대부분인데 10분이면 화장실만 다녀와도 쉬는 시간이 끝나는 것 같다.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한 시간동안 점심시간을 보내고나면 오후에도 3시 30분, 5시 30분에 두 시간 마다 휴식을 한다. 쉬는 시간엔 보통 커피나 물도 드시지만 하루종일 서서 움직이다보면 당이 떨어져서 빵이나 과자도 많이 드시는 것 같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지 어제보단 덜 힘들다. 예상했던대로 다음주도 나올 수 있냐는 제의가 왔고 륙지에 가야해서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닝겐의 기계화 얘기는 굳이 안 했지만 이정도의 노동강도라면 시급이 좀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