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하는 마음...
은빛 비늘
오랜 만에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낚시 가방과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면서 어머니는 음료수를 내밀었다.
대개가 그렇듯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일을 계속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게다. 평생을 해오던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심정은 다 같은 마음이겟지만, 각자가 느끼는 허무함의 깊이는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더는 가야 할 곳이 없어진 아버지는 이틀이 멀다 하고 동이 트기도 전에 낚시를 간다고 했다. 지금쯤 어느 못 가에 낚싯대를 펴 놓고 물 위에 떠 있는 찌를 한없이 바라보며 앉아 있을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열 살 때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짧은 낚싯대를 하나 내어주었다. 손수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바늘에 끼우게 하고, 그것을 물에 던져 넣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낚싯대를 담가놓고 커다란 돌멩이를 주워 다가 아버지처럼 앉아서 찌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몇 마리씩이나 붕어를 잡아올릴 동안 내 낚싯대의 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지렁이가 도망간 것은 아닐까 하고 낚싯대를 꺼내 보았지만 빨간 지렁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자주 낚싯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을 보고, 물고기가 와서 물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렇게 자꾸 꺼내면 오히려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고 말했다.
기다림. 어린 나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는 것이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절로 하품이 나왔다. 그때였다. 꼼짝도 않던 찌가 갑자기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 토끼 마냥 눈이 커졌다. 찌는 살아있는 것처럼 연방 물 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후다닥거리며 낚싯대를 잡고 위로 쳐들었다. '부르르' 하며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오는 진동이 팔과 어깨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가더니 급기야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게 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당겨라!" 아버지는 옆에 서서 물고기를 물에서 건져 올릴 때까지 말로만 거들었다. 내 몸을 짜릿하게 뒤흔들었던 떨림이 아버지에게 옮겨간 것일까.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낚싯줄처럼 팽팽하게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놓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침착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낚싯대를 끌어당겼다. 드디어 물 밖으로 모습이 드러난 붕어는 힘을 쓰지 못하고 쉽사리 끌려나왔다. 놈은 풀밭에서 펄떡거리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어린 꼬맹이에게 잡힌 것이 매우 분하고 원통하다는 듯 마구 꼬리를 쳐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비늘이 참으로 멋있게 보였다. 잘했다는 아버지의 칭찬에 내 심장은 방금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생전 처음으로 잡아본 붕어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낚시를 갈 때마다 붕어를 잡는 것은 아니었다. 종일 뙤약볕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빈 망태기를 들고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나에게, 오늘 못 잡았다고 실망할 것 없다며 다음에 다시 잡으러 오자고 말했다. 아버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이 별로 아쉽지않은 눈치였다. 내가 낚시를 가서 잡으려 했던 것이 붕어였다면, 아버지는 그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답답한 가슴을 달래려고 가까운 강으로 낚시를 가곤 했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온종일 물 위에 떠 있는 찌만 쳐다보았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정작 붕어 잡는 일보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기억들만 떠올라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답답한 가슴을 풀려고 나왔는데 그것조차도 쉽지가 않았다.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찌 끝에 올라앉았다. 찌는 잠자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하고 기울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흥미있게 바라보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에는 행여나 잠자리가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지 모를 무거운 것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기울어진 찌가 마치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찌를 짓누르고 앉아있는 잠자리가 미워져 낚싯대를 손으로 세게 쳐서 잠자리를 쫓아 버렸다. 찌는 다시 똑바로 섰지만 기울어졌던 마음은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강물 위로 드리워진 산 그림자가 물결에 일렁이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눈 안 가득 차올랐다. 그 어두운 산 그림자 속에서 뻐꾸기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짧게 끊어지는 울음소리가 강물 위를 떠다니다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저녁 어스름이 강물 위로 스멀스멀 내려오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우는 중이었다. 많이 잡았느냐고 말하면서 물에 담긴 망태기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피라미 한 마리가 허옇게 배를 드러내고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돌멩이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두워져 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물결에 흔들리는 찌만 묵묵히 쳐다보았다. 한참 뒤, 아버지는 할 말을 다 하고 나서 마지막 말을 하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나는 아무 말없이 미끼 통을 열어 지렁이를 강물에 쏟아부었다. 아버지는 망태기를 거꾸로 뒤집어 잡아놓았던 피라미를 풀어주었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앞에서 천천히 달려갔다. 내 자전거가 앞서 가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잡으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 달렸다. 키가 큰 미루나무 사이로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어둠이 내리는 둑길 위로 네 개의 동그라미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를 태운 자전거는 강물처럼 소리없이 흐르는 세월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아버지는 점심때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손에 들려진 망태기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이렇게 더운 여름에 무슨 낚시를 가느냐고,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서 새벽부터 나가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의 핀잔 섞인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
아버지의 낚시는 붕어를 잡는 게 목적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오늘도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 할 일이 없어진 노년의 서러움과 허망함, 자식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들을 낚싯바늘에다 끼워 숱하게 강물에다 던졌을 게다. 어쩌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맛없는 미끼를 붕어인들 먹고 싶겠는가. 아버지의 낚시는 붕어를 잡는 취미가 아니라 삶의 뒤안길에 남겨진 가슴앓이를 강물에다 고스란히 내다버리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구석에 던져둔 망태기 안에는 붕어 대신 기나 긴 세월의 강에서 낚아올린 아버지의 은빛 삶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