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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Dec 07. 2021

[동화]  왼 손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왼 손



  벌써 열흘이 지났건만, 의사가 6주라고 했으니 지나온 날보다 남은 날이 까마득하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인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아직 오른손이 모음을 채 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왼 손가락이 다음 자판을 두드리는 바람에 글자가 또 틀리고 말았다. 지우고 다시 고쳐쓰기를 한 것도 몇 번인지 모르겠다. 에이그, 잘 좀 하지...


  왼 손은 느릿느릿한 오른손을 탓하느라 툴툴거린다. 성질 급하게 뒤따라오는 왼 손이 미워진 오른손이 딱딱한 갑옷으로 한 대 쥐어박아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자기의 할 일을 대신해주는 걸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다. 괜히 삐치면 오른손 저만 손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참아야지....


  계단에서 자빠질 때 왼 손으로 짚었더라면, 왼 손에 깁스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내내 맴돌아 다닌다. 아마도 이 답답한 족쇄를 푸는 순간까지 오른손은 생각할 게다.


  오른손은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이렇게 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말이다.


  밥을 먹을 때도 오른손이 숟가락, 젓가락질을 하는 동안 왼 손은 우아하게 식탁 머리에 턱 하니 걸친 채 구경만 했다. 가느다란 막대기 두 개로 작고 미끄러운 콩알을 자연스럽게 집어먹는 오른손이 그때는 당연시 여겨졌었는데, 막상 임무를 부여받아 젓가락을 끌어안고 어정쩡하게 허공에서 주춤거리는 꼴이라니...


  벌건 양념이 잔뜩 묻은 김치 조각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낚아서 오다가 그만 식탁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시 젓가락을 바로 잡고 집어 올려 조심조심, 혹 숨소리에 떨어지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 에라 기다리다 또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얼른 입을 내밀고 만다. 


  밥 한 그릇 먹는데 왼 팔이 뻐근하고, 손가락들이 쥐가 난다고 난리다. 왼 손은 숟가락, 젓가락질이 뭐가 이리 힘드냐? 못 하겠다고 나자빠지고 싶어도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오른손은 쪼로미 손가락 두 마디만 내밀고 까닥거릴 뿐 불쌍한 왼 손을 애처로운 듯 내다보기만 한다. 아마 속으로는 오른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보라며 쾌재를 부르지나 않았을까?


  대부분의 생활에서 어느 한 손이 혼자서 하는 일보다는 같이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세수도, 양치질도, 옷을 입고 벗을 때도, 지금처럼 컴퓨터를 할 때도 양손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한 손으로 해야 하니, 그것도 항상 보조만 하던 왼 손이 말이다. 왼 손으로 어쨌든 세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비누칠은커녕 물로 씻지 못한다. 자기를 씻어줄 오른손이 물을 묻히지 못하니까... 왼 손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른손을 쳐다보지만, 역시나 한숨만 내쉬며 기대를 저버리고 만다.


  한 손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옷을 입어도 마지막 왼 팔의 소매에 달린 단추는 채우지 못한다. 남을 위해서는 다 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쌍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 다친 오른손이 아니라 다치지 않은 왼 손이다. 하지만, 왼 손은 조금만 견디면 오른손의 임무를 넘겨주고 다시 원래 자기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왼 손에게는 그나마 다행히 아닐까...


  그리고, 오른손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겠지... 오른 손도 그동안 고생해준 왼 손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될 거고...


  이 답답한 족쇄를 푸는 날, 두 손은 서로 맞잡고 깊은 포옹을 할 게다. 서로 고생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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