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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탁 진 Apr 10. 2022


호숫가에 떠도는 봄날

봄의 사생...

                        

  오전 내내, 거실 창을 내다보며 봄볕이 너무 좋다고 종달새 마냥 노래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더니, 점점 커지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 소원 들어주는 게 나의 하루에 평화를 위해 좋을 듯싶었다. 

  봉무공원 단산지 주변에는 아직도 하얀 벚꽃잎들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날리고, 목련꽃들이 화등잔처럼 봄을 밝히고 있었다. 


  봄볕의 유혹에 이끌려 나들이 나온 이들이 많았다.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조심하라고 소리치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에도 화사한 봄꽃이 활짝 피었다. 


  호수 주위를 따라 마사토를 깔아 놓은 산책길을 걸었다. 간혹 신발을 벗고 걷는 이도 있었다. 아내는 내게 맨발로 걸어보라고 말했지만, 건강에 좋다고는 해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거 같아 그만두었다. 


  도시에 살면서 맨발로 걸어볼 기회란 그리 많지 않을 게다. 그래서 공원이나 산책길 같은 곳에 일부러 흙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맨발로 흙을 밟아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길을 만날 때면, 언제 나도 저기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한 번 걸어 봐야지... 생각은 했었다.  


  쿠션 좋은 운동화를 벗고 딱딱한 맨땅 위를 걷는다는 건 분명 건강에 좋을 듯도 싶었지만, 흙으로 더럽혀진 내 발을 씻고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귀찮음에 핑계를 삼으며 아내의 손을 잡아끌었다. 봄은 나를 게으른 고양이로 만들어 버렸다... 


  간간히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느라 잠시 걸음을 멈출 때면, 나무 위에서 새들이 쫑알쫑알 쉬어가라며 훈수를 두었다. 곁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저거 보라며 신기해했다. 호수에 몸을 담그고 서 있는 왕버들 나뭇가지에 새끼 거북들이 쪼로미 열을 지어 올라앉아 있었다. 그네들도 따사로운 봄햇살을 맞으며 여유로운 봄날을 즐기는 가 보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멀리서 따다다다~~~ 딱따구리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나는 아내에게 저 소리 들리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들었단다. 남편의 재채기 소리도 구분하는데 어찌 저 소리가 들리지 않겠냐고... 


  전날 저녁이었다. 운동을 한다며 아파트 3층 마당으로 나가 열심히 뺑글뺑글 마당을 돌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재채기 하지 않았냐고...  


  어떻게 알았지? 우리 집은 5층이었고, 아내가 나의 재채기 소리를 들었다는 곳은 반대편 헬스장 근처였는데... 나는 아내의 말대로 조금 전에 재채기를 연속으로 두 번 하기는 했다. 주방에 물을 마시러 왔다가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던 것이다. 마침 거실 창이 열려 있었지만, 어찌 저 멀리, 아마 거리가 족히 50 미터는 넘을 성싶은데...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나는 소리가 어찌 나의 재채기만 있었을 것인가...


  아내의 말은, 몇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찌 남편의 재채기 소리를 구분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가? 나는 아내의 재채기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는지.... 글쎄~~  어쩌면 관심도의 차이라면... 음, 내가 불리해진다... ^^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산새들 소리, 간간히 멀리서 열심히 나무에 구멍을 뚫어 벌레를 잡아먹느라 바쁜 딱따구리 소리... 잔잔하게 물결치는 호수를 바라보며 저 날리는 벚꽃잎처럼 많은 봄날들을 뒤돌아보았다. 


  봄... 볼 게 많아서 봄인가? 


  봄에는 아름다운 게 많다. 꽃도 피고, 연둣빛 새싹도 나고, 바람도 부드럽고, 얼어붙었던 우리의 얼굴도 밝게 피어난다. 그래서 봄은 뭔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는 황무지라면 이 계절이 잔인한 계절이겠지.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처럼...


  지나간 세월 속에 어찌 꽃 피는 봄날들만 있었겠는가. 때로는 힘들고 괴로운 시간들도 많았을 게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흐르면 힘들었던 봄날은 희미해지고, 따스하고 행복했던 봄날들만이 새록새록 다시 피어나 아름다운 꽃이 피고, 행복했던 기억들로 우리의 야윈 가슴을 감싸 온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군데군데 설치해놓은 스피커에서 한 줄기 클래식 음악이 우리의 뒤를 따라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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