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눈으로 본 7개 예술 공간 이야기
깨끗이 지워진 땅 위엔 아파트가 지어지고, 땅에 쌓였던 이야기는 산화합니다. 미분양된 공허한 공실을 바라보며 곧 다시 밀려올 욕망을 떠올립니다. 한편으론 우울하고, 한편으론 치가 떨리지만 그냥 방관하기엔 남겨진 시간 동안 배울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0을 가리키기 전까지 아직 남겨진 도시에서 우린 어떤 것을 잊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땅을 이해하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해 온 건축가들의 입장을 상상해 보면 오늘날 자행되는 일들이 매우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비례한 고통일 것입니다. 자본과 투기의 장이 된 개발의 흐름 속에서 건축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해야 할지.
고민 속에서 건축가들은 6개월 동안 도시와 건물,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한 기록 했습니다. 그들이 채집한 입체적인 삶의 모습 중 이번엔 을지로의 예술이 만든 다양한 '장소'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합니다. 7개의 능동적으로 변화한 공간은 자신의 삶을 어떤 건축에 담을지 고민한 결과 들이었습니다. 그들을 해석하고, 기록한 결과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공간을 대하고 건축을 대해야 할지 이야기 나눌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낡은 을지로의 대안 공간에서 2주간 '자립건축사무소'가 개관했습니다.
목차
만남
전시가 된 이야기
자립건축사무소
2023년 5월 세운홀에서 건축가 이재원 소장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건축가이지만, 한국에서 건축이 건축다워지기 위해 '탈건축'을 해야 한다며 동료들과 협동조합(ACoop)을 만들어 연구를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소장님께서는 운영하는 스튜디오 학생들과 을지로를 조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소장님의 제안으로 그들의 시간 속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건축과 학생들은 각자의 시선이 닿는 것들을 중심으로 을지로의 이야기를 해석하고 기록해 나가는 길을 한 발치 떨어져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산림동 일대 밀집한 '철공소', 다음은 3가와 4가 일대 '예술가들의 공간', 다음은 인형동으로 중심으로 펼쳐진 '인쇄소'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밥은 어디서 먹는지, 다방 커피는 어떤 경로로 배달되는지, 제조 공정 과정과 건축물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거리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사람들과 유기적인 작용을 했는지 등 시선 닿는 곳, 시선 닿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채록되고 해석되었습니다.
1. 산림동 철공소(2023)
2. 을지로 예술공간(2024)
3. 인현동 일대인쇄소(2024)
2024년 예술가들의 공간 7곳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며 공간과 지역, 공간과 사람이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개방적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는 예술 공간을 인터뷰의 우선순위로 삼았습니다. 반드시 스스로의 정체성을 예술가라고 칭하는 사람이 운영하는 공간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공간 안에 예술을 담고 있고, 공간을 바꾸는 동력이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공간을 만드는 동력이 되어준 '예술'은 나의 삶 속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지향하는지에 대한 태도가 몸에 익어 있음의 대의 어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느 날은 15년간 을지로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며 개인 작업과 지역기반 기획을 해오신 손원영 작가님을 뵈러 갔습니다. 작가님은 수줍게 환영하고 즐겁게 거리를 누비는 분이셨습니다.
을지로라는 지역이 여러 지점에서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공업단지 내 위치한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특성을 1:1로 놓고 보아도 좀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느슨하게 연대합니다. 서로의 존재를 알지만 개입하지 않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함께 합니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현상도 어느 시점에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앞서 이 지역에 있어온 선배들의 문화가 발걸음 닿는 곳곳에 녹아 있고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 중에 양분으로 삼으며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시작의 기틀을 만들어준 손원영 작가님과 그 당시 활발히 논의하고 활동하셨던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역에 흥미를 가지고, 나의 자원을 동료에게 내어주고, 함께 의지하고, 서로 인근 위치에 독립해 지원군이 되어주고, 각자 성장하고, 때론 다른 환경으로 떠나고, 놀러 오고.
손작가님에게 작업실이 있는 4층과 옥상은 때론 독점하고, 공유하고, 후퇴했다 수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예전 작업실이었던 곳이 새 입자를 맞아 독립된 공간으로 쓰이다 다시 동료들과 함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를 만드셨습니다. 작가들에게 한 달씩 '자유롭게' 내어줍니다. 그곳에서 작업을 해도 좋고, 공부를 해도 좋고, 전시를 해도 좋습니다. 그 서사가 건축가들에게도 유의미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대안공간으로 운영 중인 Space Unit4는 (당시) 재개발로 인해 12월까지 운영하고 마감해야 하는 시점었습니다. 을지로를 종횡무진 누비셨던 손작가님의 서사와, 누구에게 나를 내어주는 Space Unit4의 서사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점에 예술 공간들이 만들어온 의미를 펼쳐보기에 적절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만남에서 나온 말이 있습니다.
11월에 자립건축 전시 하자!!
전시 서문
[자립건축사무소 Architecture Office for Subjective Life]
《자립건축사무소》는 ‘건축가가 아닌 건축가들’이 스스로 삶을 설계하며, 을지로의 공간을 창의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밀하게 얽혀있는 을지로 아래층의 산업 공간을 지나 올라가면, 낡은 건물 꼭대기에 일반적인 건축 개념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변형하면서, 삶과 맞닿은 건축을 만들어가는 문화예술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을지로의 7개 문화예술 공간을 대상으로, 삶과 건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자립적 건축을 이루어냈는지에 관한 연구의 결과를 선보인다. 도면, 모형, 인터뷰 자료와 공간을 상징하는 오브제 등을 통해 건축 속에 녹아든 그들의 삶을 다층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관객들은 자립건축사무소 운영팀과 연구의 결과물들을 공유하며, 나의 건축을 구상하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건축은 단순한 물리적 형태를 넘어 삶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현대 건축의 상품화와 표준화는 점차 수동적이고 획일화된 삶을 만들어간다. 《자립건축사무소》는 자신만의 건축을 통해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을지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체적인 삶을 위한 건축의 역할과 의미를 묻는다. ‘모두가 건축가’를 꿈꾸는 이 전시 《자립건축사무소》가 건축과 삶, 을지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프로젝트 기획
연세건축 Studio X_UNIT 2
ACoop
작은도시이야기
리서치 및 제안
연세건축 Studio X_UNIT 2
전시 기획 & 진행
연세건축 Studio X-UNIT 2
ACoop
SpaceUnit4
작은도시이야기
일시
2024. 11. 13 - 2024. 11.27 수-일, 11:00-18:00
장소
SpaceUnit4 서울 중구 을지로 143 4층
건축가들이 시선으로 6개월간 조사하고 분석한 7곳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가진 건축적 의의를 추출하여 다른 곳에 적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였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 자료를 나눌 수 있도록 첨부합니다.
· @spaceunit4 @artist.wonyoungson
· 작고 깊은 공간
을지로의 7 공간을 통해 본 가능성을 토대로 '모두가 건축가'를 꿈꾸며 건축과 삶의 실현이 가능한 당신만의 건축을 상담해 드립니다.
당신의 건축은 어떤 모습인가요
연세건축 Studio X_UNIT 2
・지도교수 : 이재원 연세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
・참여학생 : 류지민, 송원서, 유시영, 이강준, 이현준, 정용운, 허성우, JACQUELINE SHIN AH KIM, PAOLA TRASLOSHEROS 연세대학교 재학생 및 교환학생
ACoop
・김자경, 이재원
작은도시이야기
・고대웅
SpaceUnit4
・강지선, 손원영
※이 전시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Studo X_UNIT2의 작업 결과물로 기획되었습니다.
・ACoop : @acoop.kr
・작은도시이야기 : @tales_of_the_tiny
・SpaceUnit4 : @spaceunit4
・자립건축사무소 : 자립건축사무소 Architecture Office for Subjective Life
도시 속 작은 도시의 예술이야기를 전하는〈작은도시이야기〉 뉴스레터 ►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