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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 Nov 21. 2019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이터널 선샤인]

유튜브: https://youtu.be/GHEHSU5hqUY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연인이 된 이후에는 이별한 적이 없다. 물론 냉랭했던 시기도 있었고,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연인들이 그러듯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해본 적 없는 경험이지만 이별은 두려웠다. 당신이 없는 나를 상상하는 것도, 내가 없는 당신을 상상하는 것도 감당할 수 없을 슬픔이었다.


우리도 딱한 커플이 되어가는 걸까 둘이 멀뚱하게 앉아 먹어대기만 하는.. 그건 너무 끔찍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그 슬픔을 겪는 중이었다. 이별한 연인이 하는 첫 번째 행동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고, 클레멘타인은 라쿠나사에서 기억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받는다.

이별할 듯한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나는 추억의 힘을 자주 빌려 쓰는 편이었는데, 꽤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가 이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공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날들을 기록해 둔 일기와 사진들을 모아둔 클라우드에게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첫 만남의 설렘을 다시 훑고 있으면 지금의 내 권태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게 된다. 기억은 헤어진 연인을 다시 연인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우리가 정식으로 연인이 되기 얼마 전부터 내 일기는 당신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와 우리의 대화로 채워졌다. 조엘의 대사처럼 나는 당신이 없는 내 삶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라쿠나사가 나에게서 당신의 기억을 지운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한다면 갈피를 잡지 못할 게 분명하다. 당신은 그만큼 촘촘하게 내 삶을 채웠다.


조엘을 지워버린 클레멘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마냥 추억에 빠져 살 수 없다. 지금의 나와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별할 수밖에 없고 이별한 다음 날에도 우리는 출근을 하고 일상을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 이별은 조엘을 지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한 클레멘타인 본인도 지우는 것이다. 아무리 욱하는 성격의 클레멘타인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결정일테다. 결정을 할 땐 충동적으로 했을지 몰라도 기억을 지우는 중에 조엘처럼 후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에 분노해 조엘이 클레멘타인을 지운 것은 조금 찌질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이다.


제발 이 기억만은 남겨줘요


호기롭게 클레멘타인을 지워달라고 했던 조엘은 곧 후회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말하듯이 어떤 기억은 핵심 기억이고, 핵심 기억은 퍼스널리티를 형성한다. 사랑이라는 인격을 구성하는 조엘의 핵심 기억을 지우려고 하자 취소해달라고 발악을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내가 어릴 적 좋아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선아가 현빈의 옛 연인인 정려원을 도발하기 위해 하는 대사가 있다. “추억은 아무 힘도 없어요”.

추억은 아무 힘이 없어서 추억 안에서 조엘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조엘은 그 안에서 정말 문자 그대로 발버둥을 친다. 추억 때문에 마음은 돌이켰지만 정작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추억 속 클레멘타인은 현실에 없다. 현실의 클레멘타인은 나에게 질렸고, 내가 하는 못된 말에 상처 받았다.

오케이


추억 속에서의 발버둥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 불현듯 몬탁에 가고, 떠나는 클레멘타인을 붙들고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앞으로 상처 입을 것을 앎에도 “오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케이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을 텐데,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자존심을 구기며 내뱉은 “괜찮아” 한 마디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우주를 흔들 힘이 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지만 불행해도 함께이면 “괜찮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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