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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Jul 26. 2021

안부를 묻는 일

물어봐주었을 때 비로소 특별해지는 누군가의 일상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도 일명 '점 바이 점'이라고 하는 서비스의 격차가 있다. 어떤 지점은 대체로 무뚝뚝하고 분위기가 굳어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지점은 사람 간의 정이 느껴지는 곳이 있다. 며칠 전 방문한 카페가 그랬다.



"1번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명랑한 목소리로 음료가 나온 것을 알리는 직원 앞으로 노신사 한 분이 다가갔다. 직원은 다시 한번 물었다. 


"주문번호 1번 맞으시죠? 오랜만에 오셨네요?"

직원은 노신사에게 아는 체를 하며 웃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노신사는 직원에게 되물었다.

"마스크를 썼는데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알아봤어요?"


"항상 멋지게 정장 차려입고 오시잖아요"

직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웃었다. 실제로 노신사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돌아서는 노신사의 넥타이에서 은색의 핀이 빛났다. 도시를 뜨겁게 달구는 찜통더위에 오랜 시간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을 그 노신사의 뒷모습을 꽤 오래 지켜보고 서있었던 것 같다. 



한창 사회생활을 하는 30대인 나도 정해진 활동반경 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외에는 안부를 묻는 일에 인색하다. 오래된 친구들조차 다들 살아가느라 바쁘다 보니 정작 기본적인 안부를 묻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황혼에 접어든 노인에게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울까.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아이폰에는 취침시간을 설정하면 그 시간 이후로 모든 알람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 나는 오후 11시를 취침시간으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11시 이후에는 자동으로 수면모드로 전환된다. 수면모드에서는 잠금화면에 이런 문구가 나타난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랜 연애를 마치고 혼자가 된 후에는 '잘 자', '잘 잤어?', '밥 먹었어?' 같은 시시콜콜한 안부가 귀해졌다. 연애할 때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말고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늘 불만스러웠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오랜만에 누군가(그 누군가가 AI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내 잠자리의 안녕을 챙겨준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격스러웠던 날이 있었다. 



대부분의 날을 집 안에서 보내는 요즘에는 유난히 사람들의 관심이 고프다. 나는 나대로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고, 매일매일 성장하고자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데 나눌 사람이 없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괜히 SNS를 기웃거린다. 내 주변 사람들 또한 누군가의 관심을 애처롭게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안부를 물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 내밀면 잡아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모르는 척 살아간다. 그러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아주면 그게 또 그렇게 감동스러울 일인가.



어느 날은 오랜 친구와 야경을 보고 한강을 걷는데, 친구가 묻는다.


"너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


사실 하루 일과라고 해봐야 끼니를 때우고, 뉴스를 읽고, 독서를 하고, 운동을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지난한 날들이지만 하나하나 늘어놓고 있자니 괜히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보잘것없던 나의 일상도 특별해진다. 기승전결도 없는 예술 영화가 누군가에 의해 설명되고, 해석되는 순간 작품이 되는 것처럼. 세상 어디든 있는 사람과 풍경이 사진이나 그림으로 액자에 걸려 제목이 붙으면 다시 보게 되는 것처럼.



안부를 묻는다는 건 가볍지만 가장 깊은 관심이 아닐까. 물어주기 전에는 그저 지나쳐가는 순간일 테지만 시선을 두고 묻기 시작할 때 관심이 되고 관계가 된다. 때로는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본다. 어떤 이의 순간이, 하루가 그 사람의 삶 전체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일과 중 특별한 계획 하나를 추가한다. 

'안부 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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