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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LKIVE Feb 20. 2020

#A4. 추억과 낭만의 가로수길

나무가 있어서 좋았던 아파트

유년 시절과 사춘기, 대학생, 취준생, 회사원까지 나의 모든 삶을 함께한 진흥아파트의 재건축이 결정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 공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진으로 남겨야지 하고 떠오른 장소가 진흥아파트 저층부의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은행나무는 저층부 중앙차로 양쪽에 입구부터 끝까지 심겨 있다. 


아파트의 세월만큼 큰 키와 굵직한 둘레를 자랑하는 은행나무. 저층부가 5층 아파트인데 이미 5층 높이는 거뜬히 넘었다. 이 가로수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다른 낭만이 있다. 봄이 되면 하늘하늘한 연두색 어잎들이 올라와 겨울이 다 지나고 이제 따뜻해질 거라고 알려준다. 몇 번의 봄비와 꽃샘추위를 견디고 드디어 은행나무잎의 모양을 갖춘다. 그리고 연두색에서 진한 초록색으로 점점 성숙해진다.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왕성한 초록의 기운을 뽐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의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은 평온한데 활기찬 토요일 아침 같다. 은행나무에 붙은 매미들은 단지가 떠나가라 울어댄다. 대신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강렬한 여름 햇빛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진흥아파트에 가을이 찾아오면 벚나무 잎사귀부터  붉은 색으로 변한다. (진흥아파트는 숨겨진 벚꽃놀이 명소이다) 이제 곧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옷을 갈아입겠구나 생각한다. 10월 말, 늦가을에 하나, 둘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11월 중순이 되면 단지 전체가 가을옷을 입는다. 은행잎이 나풀나풀 떨어져 회색 아스팔트에 옐로우카펫이 펼쳐진다. 유년 시절 사진 앨범을 보면 나와 동생이 폭신폭신하게 쌓인 은행잎 더미들 위에 앉아 손가락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있다. 노랑비가 내리는 길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사진도 있다. 경비아저씨는 바닥에 쌓인 낙엽을 치우느라 고생하신다. 낭만과 현실의 콜라보다. 


2019년도 11월에 그 가로수길의 마지막 가을풍경을 담기 위해 진흥아파트를 자주 찾았다. 다행인 건 작년 가을은 은행잎이 늦게 물들고 오래 남아준 덕분에 그 가을의 풍경을 충분히 만끽 할 수 있었다. 진흥아파트에는 은행나무 가로수 외에도 플라타너스, 단풍나무, 벚나무, 목련 나무 등 못해도 30년 넘은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가 많다. 아파트 재건축과 함께 사라지는 것 중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이 나무들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을 알고 보니 더 애틋한 마음이다. 올해는 가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봄에 아파트를 수놓는 벚나무의  벚꽃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 


"나무들아 덕분에 추억도 참 많았고, 울창한 초록빛 아파트라 더 정 붙이고 살았던 거 같아 

'진흥아파트 가로수'도 그동안 고마웠어!"

진흥아파트의 봄


진흥아파트의 여름


진흥아파트의 가을


진흥아파트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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