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럴듯하다. 나는 건축가이고 디자인을 업으로 한다. 그리고 애가.. 셋이나 된다. (아이가 셋인 거보다 셋다 아들이란 점이 함정이다.-_-)
문득 보니 내 브런치 프로필에 건축가 디자이너라고 적혀있다. 페이스 북에도 건축가라고 적었고 작가라고도 적었다. 스스로 살짝 놀라긴 했지만 부끄럽거나 뻔뻔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중년이 된 나이에 그래도 뭐라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명사가 생겨서 좋기도 하다. 스스로 난 뭔가? 날 뭐라고 불러야 하나 마땅한 것이 없어서 불안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내 주위의 많은 젊은 친구들도 그럴 수 있다. 딱히 회사원이라는 명칭 말고는 갖다 붙이기 애매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
약간의 개연성만 있어도 스스로를 잘 포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간해서 그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 편이어서 스스로 떳떳한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안전한 명분을 찾았던 것이 자격증 시험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4년여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힘든 것을 참으며 건축사 자격증을 따게 됐을 때 성취의 기쁨보다는 굴레를 벗어난 해방감이 더 컸다. 드디어 나 스스로 뭐라고 부를 수 있게 됐어!
부모님의 기대처럼 곧 개업을 해서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거나 돈을 많이 벌어 보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20대부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나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자격증을 겨우 따놓고 보니 사실 그것이 없어도 나 스스로 뭐라 불러야 할지 시간이 흐를수록 알 거 같았다.
지금 나는 무엇이다.
이제 큰 흔들림 없이 나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얻은 최대의 보람 중 하나이다. 나 스스로 나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지나온 발자취에 묻어 있는 노력들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 이젠 그 이상 그 무엇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는 얘기도 될 거 같다.
결국 누구나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무언가가 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 그저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