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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자녀 디자이너 Sep 16. 2023

자동차와 유니폼

디자인, 디자이너

거리를 지날 때 남자들은 여자들을 본다. 그런데 여자들도 여자를 본다고 한다. 왜 그런 걸까? 아마 여자들의 그런 특성은 태어나자마자 인형을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성향연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길에서 남자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역시 '자동차'

소질과 전공을 불문하고 남자들이라면 자동차에 무관심하기가 어렵다. 왜 그런가 했더니 사내아이를 셋이나 낳아 보니 알 거 같았다. 세 아이 모두 태어나자마자 기차와 자동차 장난감에 푹 빠진다. 반면 딸아이들은 그런 장난감엔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정말 인형을 더 좋아하니 어찌 그렇게 유전자의 영향력은 빈틈없는지 놀라울 뿐이다.


남자들이 취업을 하고 돈을 벌게 되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차를 구입하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가졌20세기말 한국에는 외제차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었다. 전 국민을 궁핍으로 몰아넣었던 IMF 가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90년대 한국에는 현대, 기아, 대우, 쌍용자동차 와 같은 국산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현대가 그때도 가장 차를 많이 팔던 회사였다.


거의 50이 되어서야 운전을 시작하신 아버지가 첫차로 구입하셨던 차는 수동기어가 달린 중고 현대 스텔라였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1988년에 다시 구입한 새 차가 나타 (2세대) 였는데 오토미션을 달고 있었고 승차감이나 디자인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쏘나타 1세대(좌)와 2세대(우), 1세대는 아버지가 중고로 구입한 스텔라 (1985년) 모델과 플렛폼을 공유한 고급형 스텔라 모델로 보여졌다.


그러나 그 차도 10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사고로 폐차를 하게 되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아버지는 다시 중고차(대우 프린스)를 몇 년 모셨는데 차가 너무 무거워 연비가 안 좋았고 디자인이나 완성도가 나타에 비해 별로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상품성에 있어서 나타에게 경쟁이 되지 않던 타사의 중형 세단들(대우 프린스, 기아 콩코드)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콩코드는 일본에서 설계나 부품을 대거 수입해서 만든 차들이라 기본기가 훨씬 탄탄한 차였지만 나타 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더 중후한 사이즈의 그랜져와 경쟁해야 했다.


이후 풀체인지로 쏘나타2가 나왔고 디자인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됐지만 1996년  페이스 리프트 버전인 나타 3를 보고 나는 현대차 디자인이 점점 이상해져 간다고 느꼈다. 같은 해 창단된 저 현대 프로 농구단의 유니폼만큼이나.

 

현대 쏘나타3 (1996년~ 2000) 그리고 당시 현대 농구단 다이냇 유니폼(원정)


현대 프로 농구단 다이넷 유니폼 (홈)의 모티브로 보이는 현대 그룹 로고


당시 한국 동대문에 못 구하는 최신 유행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패션 산업은 낙후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국 프로 농구 유니폼은 NBA 농구에 익숙한 국내 농구 팬들의 눈높이에 한참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나는 의심이 들었다. 과연 한국에 그럴듯한 농구 유니폼조차 그려낼 디자이너가 없단 말인가?


당시 NBA 를 호령하던 마이클 조던과 샤킬 오닐


그럴 리가 없다.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자신 없으면 베끼기라도 한다. 물론 미국 농구 유니폼을 밴치마킹한 건 여기저기 티가 많이 났다. 그러나 결과물이 영 달랐던 건 디자이너의 역량 이외에도 다른 요인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 의심했다.


왕회장님이 떠오르는 현대 그룹 마크 - 중공업 등 몇몇 계열사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비슷한 컬러의 20세기 감성이 충만한 대한민국 공공 심볼


좋은걸 보고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어도 할 수 없었던 이유 중 짐작되는 것 하나는 당시 프로구단 유니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모 기업의 로고와 폰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팀이름 Dynat의 로고 디자인을 하긴 했으나 세련되지 않았고, 현대 전자의 (걸면 걸리는 걸리버) 배너를 추가로 크게 넣는 바람에 상의 유니폼이 산만하고 통일성이 없어졌다. 거기에 민방위로고를 닮은 현대 로고에 칼라까지 억지로 껴 맞춰 넣었으니.. 디자인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서 봤더라..


그렇다면 기업의 로고와 폰트만 조금 이뻤더라면 유니폼 디자인이 잘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디자인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결정적인 또 한 가지 이유는 결국 클라이언트의 안목(혹은 요구) 때문이다. 그것도 국내 대기업에 관련된 것이라면 최종 결정권자가 결국 '회장님'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90년대 우리나라의 대기업 문화는 '꼰대'라는 말조차 쉽게 입에 오르내리지 못할 만큼 권위적이고 수직적이었다. 늘 남자들이 압도적 다수였던 그 어떠한 조직이라도 명령이 우선인 군대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고 따라서 디자인처럼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꼭 필요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분명 이름 모를 디자이너는 로고와 폰트의 비례와 컬러의 강약을 조절해 가며 대안 보고를 여러 번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중간 관리자들(전공 불문)의 입맛에 1차로 깎이고 그다음 상급자에게 컨셉이 흔들리고 최종 단계에선 모든 게 뒤범벅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마도 그중 선정된 최종 결정은 정말 엉뚱한 걸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럼 누구의 책임?)



다시 자동차 얘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쏘나타 3로 이미지를 구긴 현대자동차는 (판매량과는 별개로)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갑자기 환골탈태하는 훌륭한 디자인을 몇 가지 내놓았다.


쏘나타는 EF 쏘나타로 바뀌면서 심란하던 디자인이 깔끔하고 유려하게 바뀌었고 그랜져 XG의 뒷모습에선 마치 유럽의 고급 가전제품에서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볼륨이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혁신적인 것은 이 싼타페의 등장이었다.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디자인 이었다. 싼타페 1세대 (2000년)



당시 현대(엄밀히는 현대 정공. 정주영 vs 정세영 후계 구도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는 겔로퍼라는 정통 SUV를 1991년도부터 생산하고 있었는데 자체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일본 미쯔비시의 '파제로'를 라이선스 생산했던 것이다. 그런데 규모의 경제에 치중되었던 현대와는 달리 나름 자사만의 차별된 디자인을 추구하던 두 회사 쌍용과 기아는 '무쏘'와 '코란도' 그리고 '스포티지'라는 걸작을 만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기 드문 도심형 SUV를 두 회사가 자체 개발하여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고 있던 중이었고 아마도 현대에게 자극에 됐 터였다.



쌍용의 뉴코란도(1996년) 과 기아의 스포티지 1세대 (1993년)



90년대의 뉴코란도와 스포티지의 디자인은 모서리 등에 직선보다는 부드러운 곡선을 많이 넣어 기존 각진 SUV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승용차처럼 편안한 '크로스오버'의 세계적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더욱 새롭고 미래적인 자동차로 보였었다. 그런데 후발 주자 현대에서 21세기를 맞이해서 새로 나온 SUV 싼타페는 모서리를 둥글린 수준이 아닌, 얼핏 잘 못 보면 차가 찌그러진 걸로 보일 만큼 문이나 펜더의 굴곡이 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고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훌륭한 디자인으로 평가 됐다.



그랜져 XG(1998년) 특히 뒷모습이 예뻤다.


이뿐 아니라 조금 먼저 출시된 EF 쏘나타와 그랜져 XG의 디자인도 이 전과는 확연히 차별화될 만큼 디자인이 개선되었다. 두 모델은 당시 IMF를 예상 못한 삼성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던 시기라 이를 견제하기 위해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자체 기술이 없던 삼성이 닛산 맥시마(4세대, 1994년)를 거의 그대로 수입해서 조립해 만든 SM520, 525는 사실상 일본차나 다름없었다. 닛산 원본이 워낙 미국시장에서도 잘 팔린 월드 베스트셀러카로 디자인 품질 모두 한 단계 우위가 예상되었지만 현대는 각고의 노력으로 판매량에서 앞서며 밀리지 않는 토종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훗날 시간이 지날수록 내구성에서는 SM에게 상대가 못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10년도 못되어 내부 공조 디퓨져가 변형이 생겨 뒤틀리고 그다음 해엔 철판에 구멍이 나고 차체 형상도 살짝 앞뒤로 주저앉는 변형까지.. XG는 이전의 한국차와 마찬가지로 10년 이상 타지 말라는 차였다. 반면 당시 일본 부품으로 조립 완성 했던 SM 은 20년이 지나도 타이밍 벨트와 미션 교환 한번 없이 잘 돌아다니는 차들이 흔한 것을 보고 그때부터 어쩔 수 없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현기차'라는 선입관이 생겨버렸다.)


삼성의 SM5 와 닛산 세피로(수출명 맥시마)


갑자기 현대차의 디자인이 좋아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느 때처럼 남자들이 모여 자동차 얘기 (여자얘기 아니면)를 하는데 타 자동차사의 엔지니어였던 친구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중요한 얘기를 해줬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현대 자동차는 정세영의 외아들 정몽규로 실세가 바뀌었다고.(정세영은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동생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온 젊은 회장이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 바른 방향을 제시하여 그것이 바로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라며 현대를 부러워했다. 서울의 모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타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던  친구 언론 보다 더 생생한 자동차 업계의 정보를 흘렸다.



정몽규 회장이 198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서 1996년 신입 회장이 되기까지 8년여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반영하며 애썼 그간의 결실이 (EF 쏘나타, 그랜져 XG, 싼타페) 신차가 되어 드디어 세상에 나올 때 즈음, 그러나 현대 자동차는 갑자기 회장이 또 바뀌는 일을 겪게 된다. 현대의 창업주 정주영과 현대자동차를 맡아 키운 동생 정세영 사이에 권력 승계 힘겨루기가 있었고 1998년 결국 현대 자동차의 주인은 정주영 회장의 큰아들 정몽구로 바뀌어 버린다. 이 역시 능력보다는 혈통(라인)을 중시하는 누가 봐도 고리타분하고 불합리한 세습이었고,  2대에 걸쳐 자동차에 헌신한 정세영과 그의 아들 정몽규의 입장이 억울해 보였다. 그러고는 몇 년 뒤 그 예쁘던 XG의 뒤태가 이렇게 바뀐다.

으엑...이게 뭐야!


특히 뒷모습이 예쁘던 그랜져 XG의 디자인이 왜 이렇게 바뀐 걸까? 1998년 출시하여 2000년까지 북미등 해외까지 위상을 떨치며 대단한 호평을 받던 XG는 2002년 페이스리프트를 내놓았는데 당시 나는 정말 할 말을 잊을 정도로 충격을 먹었다. 차폭이 더 넓어 보이게 하려고 그런 거라고? 도저히 납득이 안 돼서 찾아보니 역시.. 그 사이 회장님이 바뀐 사건과 연관이 있었다. (참조글 : 아무리 회장이 한마디 했다고 말이야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4722738&memberNo=33310284&vType=VERTICAL)


친구에게 들었던 정몽규(전) 회장의 이야기가 입증되는 사건이었다. 물론 사람의 안목은 입맛처럼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보편타당한 풍미와 아름다움이란 것이 있으며 인간은 그러한 것을 선호하고 추구하기에 요리사와 디자이너라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디자이너가 한 짓이란 말인가? 참조글에 나오는 미국 딜러들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 거부사태'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일 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서두부터 언급했듯이 이런 불합리한 디자인 결정은 우리나라 (대) 기업에서 흔한 일이었다.


이 사건이 약이 됐을까? 현대자동차는 이 후로는 디자인의 큰 퇴보는 보이지 않았고 무리한 권력 교체의 후유증을 짧게 치른 뒤 이후 3대 세습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순항 중이다. (Thanks to 미국 현대차 딜러)


- 다음 글 '디자이너와 회장님'에서 계속..


우연인지 몰라도 농구 유니폼 디자인도 이후로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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