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과 철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메스 Apr 22. 2023

나를 옥죄는 불안, 의 정체를 탐구하는 일

현대인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불안'을 고른다. 한국 사회에서 20대 청년으로 살아가며 매일매일 절절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너'와 '나'의 불안한 기분인 것 같다. 20대 청년뿐일까? 사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들은 크고작은 불안을 늘 달고 산다. 오늘은 지독한 인생의 동반자, 불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불안과 평화롭게 반려(返戾)하며 살아가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한국사회는 객관적으로 불행한 사회다. OECD 기준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1위, 출생률 최하위 & 고령화 지수 최고위, 노동 시간 최상위권,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등등 각종 지표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일상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출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일명 '국뽕 짤'


찬란한 K-팝의 위상,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놀라울 정도로 풍요로워진 물질적 삶과 별개로 우리는 자주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경제, 문화, 과학기술, 사회 인프라의 수준이 세계와 견줄 만큼 발전했음에도 어떻게 이토록 사회가 격렬하게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청년들의 신음소리는 그칠 줄을 모를까.


이에 대한 진단은 매우 다방면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일상 속 불안'에 집중해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려 한다. 대한민국은 최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세상에서 가장 꼰대스러운 사람은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일구어낸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이 그만큼 매우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해봤는데 말이야', '나의 삶으로 증명해낸 바에 의하면'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에는 어느순간부터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라는 꼰대스러운 인식이 널리 퍼진 것 같다. 일명 '노오력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이것은, 악착같이 노력해서 경쟁에서 승리하면 사회적 지위와 부를 약속한다. 끔찍한 무한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에게 패자의 몫까지 몰아줌으로써 사회 전체를 신경질적인 경쟁 속으로 빠뜨린다.



출처: 일본 만화 <도라에몽>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인생의 모든 좌절과 실패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게 만든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너 하기 나름이라는 식의 '자유주의'는 우리에게 해방보다는 억압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그렇잖아도 남과 비교하고, 줄 세우는 지독한 문화가 단단히 뿌리 내린 대한민국이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다는 건 일종의 '사형선고'와 같다. 너가 실패한 이유는(불행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부모를 잘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재능이 없기 때문이야/ 멘탈이 약하기 때문이야 등등. 그러면서 엄친아 같은 성공적인 사례를 떡하니 보여준다. 단적인 예시로 대학 진학률이 7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과도한 학력중심주의만 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체 어느 나라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처럼 대학을 일렬로 줄 세우고, 그 안에서 학과별로 입결을 줄 세우고, 그 안에서 정시생과 수시생으로 위아래를 나눌까. 마지막으로 현역인지 재수생인지를 확인하면서 화룡점정을 장식! 대학 이름이 크게 인쇄된 '과잠' 문화부터 중앙일보에서 매년 발표하는 '대학순위' 같은 평가에 이토록 눈과 귀를 기울이는 사회가 어디 또 있을까. 대졸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이러한 '계급 기준'은 매우매우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마음에 안 들면? 노력해서 남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라고 말한다. 너 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험'이 학력이 된 사회에서는 대학입시가 절대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다. 대학입시뿐일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타인과의 비교인 사회에서는 이상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출처: <슈카월드> 캡처 '대한민국, 해외여행에 미치다'


대한민국은 전국민의 절반이 해외여행을 가는 매우 이상한 국가다. 해외여행 안 가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집단적으로 해외여행을 탐닉한다. 필자 또한 일본여행을 앞두고 있기에 마음이 조금 찔린다. 아무래도 이토록 해외여행을 미친듯이 가는 이유는 한국인의 피에 유목민족의 DNA가 들어있기 때문, 은 당연히 아니고,


진짜 이유는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나만 못 가면 안 될 것 같아서가 아닐까?



출처: <조선일보>


뒤처지면 죽는다는 살인적인 불안감은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한다. 최근에 논란이 된 '개근거지'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작동한다. 학교를 개근하는 초등생을 집안이 가난해서 해외여행조차 못 가는 아이로 생각하여 무시한다는 이야기. 이를 들은 맘카페 엄마들이 서둘러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도시괴담급 이야기가 널리널리 퍼진다.


우리는 숫자로 표현 가능한 모든 것을 타인과 정확하게 비교한다. 자동차 배기량, 아파트 평수, 연봉, 나이, 외모, 학력..... 목록은 끝이 없다. 크고작은 성취를 거둬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좋은 직장, 좋은 집, 사회적 인정, 칭찬받는 외모를 소유하는 일은 소수의 사람들만 거머쥘 수 있는 바늘구멍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가 어려워서, 희망적인 삶을 상상하는 일조차 점점 어려워진다.




불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참 암담하다. 내가 돈을 모으기 위해 '1억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에도 깊은 불안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닌게 아니라 가장 큰 내적 동기는 불안인 것 같다. 미래가 너무 불안해서 '돈공부'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도저히 못 찾겠으니 '돈공부'에 미친듯이 몰두하게 된다.


은연중에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오가다가 놀라는 일도 잦다.  불안과 반려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시작했는데, 간단한 진단만 하다가 벌써 글의 분량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불안과 반목하지 않고, 불안과 동행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이지만, 자신의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사회의 불안을 생각하는 일은 가치 있다고 믿는다. 깊은 사유로부터 불안과 평화를 이루는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보일 테니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타인은 지옥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