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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연서 Dec 15. 2023

6. 다시 앞머리를 잘랐다

나는 보통사람이라 그런지 머리를 기르면 짧게 자르고 싶고 머리를 자르면 긴 머리칼을 휘날리고 싶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선호에 따라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들도 단발보다 긴 머리가 더 어울린다고 하니 나름 괜찮은 스타일을 유지한다는 생각에 나도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기른다. 거울 속 나를 보면 단발은 아무래도 더 얼굴을 크게 만들고 조금 나이 들어 보이게도 하는 것 같다.


한때는 기분에 따라 머리를 자르기도 했다. 며칠은 기분이 좋다가 계속 괜히 잘랐다는 생각을 한다. 긴 머리는 간단하게 하나로 묶으면 그만이지만 짧은 머리는 오히려 손질이 어렵다. 특히나 내 머릿결은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내가 시도하는 단발의 길이는 참 어정쩡하다.


나이에 비해 새치가 빨리 생긴 나는 염색이 어느 날부터 필수였다. 새치가 눈에 보이는 오른쪽 앞머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새치가 30대 초반쯤 되는 것 같다.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은데 예전에 나는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엄청난 기록을 하진 않지만 그래도 하루를 짧게 기록하고 일기도 쓴다.


매달 앞머리를 염색해야 하는데 시험도 있고 자질구레하게 할 일이 있다 보니 미뤄졌다. 앞머리지만 속으로 넣을 수 있어 외출 시에는 잘 손질하면 그런대로 티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염색해야지 미용실 가야지 하면서 시간은 흘렀고 기말시험이 끝난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미용실에서 염색을 했다.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니 여기저기 새치가 올라왔다. 지난번 펌을 하면서 앞머리를 기르기로 했었다. 자연스럽게 길어 내린 앞머리는 어찌 보면 쪽을 진 듯 반듯하게 5:5 또는 6:4 가르마로 단정했다. 새치가 많이 보이면 그 비율을 조금 조절해 가면서 안 보이게 가릴 수 있다.


친가나 외가를 보면 아빠나 삼촌들은 어느 순간 머리숱이 부족해졌다. 그들은 어는 순간 부족한 머리숱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나는 풍성한 머리숱에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남자라면 나도 혹시 하는 마음과 함께 넓은 이마가 조금 스트레스였다. 좁은 사람은 좁아서 스트레스지만 나는 너무 넓은 내 이마가 싫었다. 친구 중 한 명은 너무 좁은 이마라 이마 라인을 정리해서 어느 정도 넓이를 유지했다.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짧은 잔머리들이 앞이마를 덮어 좁은 이마는 금세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가끔 이마를 보며 "난 너무 좁아." "난 너무 넓어." 하는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을 나누기도 했다. 왜 사람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할까?


미용실에서 나는 기르던 앞머리를 잘랐다. 나이가 들수록 이마가 더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머리를 묶으면 왠지 할머니들이 쪽을 진듯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앞머리가 생기면 더 자주 미용실을 가야겠지만 그래도 우선 잘랐다. 사실 내 앞머리는 자르기와 기르기를 매번 반복한다. 지금은 단정하게 앞머리가 눈썹 위에 있다. 오늘도 아침에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았다. 앞머리가 생기면 한 가지 단점이 매일 아침, 아니 외출할 때는 머리를 꼭 감아야 한다. 몇 가닥 되지 않지만 정리가 힘든 앞머리. 그래도 이 앞머리가 나를 조금 더 어려 보이게 한다. 염색을 하고 앞머리를 잘랐더니 보는 사람마다 다 어려 보인다고 한 마디씩 건넨다.


거울 속 나는 광대뼈가 어느 정도 있어서 인지 앞머리 없는 모습보다 눈썹 위로 앞머리를 자른 모습이 더 어울린다. 당분간은 앞머리를 유지할 예정이다. 다시 기르고 싶은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조금 더 밝아 보이고 어려 보이는 모습이 싫지 않다. 아마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인 것 같다. 취향을 찾아가지만 취향은 또 계속 변한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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