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딸 좀 살려줘~”
전화로 소리를 쳤다. 아이가 돌 무렵이니 내가 27~28살..
나는 급하면 엄마를 찾았다.
전화기 넘어 엄마는 진정하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도 진지했다.
아이가 기도를 안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큰일 난다는 말에 내가 생각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 철학관에 갔던 일, 내가 다니는 점집 이야기를 했다. 집 근처 점집에서 아이를 안 좋게 얘기해서 1시간 거리에 다니던 점집을 갔더니 아이들 들먹거리는 곳은 사이비라고 했다. 정 마음에 걸리면 간단하게 기도를 한번 하라고 한 이야기를 다 듣더니...
엄마 : 난 네 아빠 단명한다고 해도 안 했어. 무슨 애가 그런 소리를 다 믿니. 어디 다닐 때가 없어서 그런 데를 가니?
나 : 엄마도 다 가봤잖아. 지금 아빠가 건강하니 그런 거지. 어떻게 정말. 내가 얼마나 급하면 점집 다니는 얘기를 다하겠어~
엄마 : 그래서 얼만데?
나 : 70만 원이래. 처음에 사이비는 200 달라고 했어. 엄마가 손녀딸 선물 큰 거 해준다는 생각으로..
나는 말을 다 이어가지 못했다. 바보 같은 말이지만 아이에 관해서 듣고 보니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남편도 콧방귀만 뀌고 모른척하니 결국은 엄마였다.
다음 날 통장에 돈이 입금되었다. 엄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런 곳에 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한테 울고불고해서 받은 돈으로 기도를 했다. 그 덕인지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 후에도 나는 가끔 점집을 다녔다. 철없는 아줌마의 부끄러운 취미이자 힐링이었다. 내가 대전으로 이사 온 게 9년 전이니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이사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하다 보니 나의 소소한 취미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가끔 주변 지인들과 근처 점집이나 철학관을 가보기는 했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이제는 안다. 그냥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잊고 있던 나의 작은 취미는 미신 숭배였다. 부끄럽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토정비결 보는 정도로 얌전하게 지나고 있다. 사실 잘 찾아보지도 않는다. 이제는 그런 곳에 다니지 않는다. 나의 신념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