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아메리카노를 마셨지? 나의 첫 커피는 일명 다방커피였다. 어릴 때 부모님이 타 먹던 그 커피. 집에는 커피 병과 프림 병, 설탕통이 있었다. 커피는 사 온 그 병에 그대로 있었고 프림은 리필과 병을 번갈아 가면서 사 오셨다. 설탕은 항상 있어서 생각이 안 난다. 커피용품이 아닌 양념 선반이 설탕의 자리다.
커피를 마시면 나도 모르게 한입만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커피 숟가락으로 살짝 맛을 보여준다. 커피 먹으면 머리가 나빠져서 공부 못한다. 밤에 잠도 안 온다고 했다. 내가 엄마는 하면 본인은 어른이라 괜찮다고 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커피를 많이 마실 거라 생각했다. 나는 실제로 커피를 좋아한다. 밤 10시, 11시에 먹어도 잠을 잘 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른들이 없을 때 프림에 설탕을 타서 커피 마시는 시늉을 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추운 겨울 커피를 마시는 부모님 옆에서 코코아를 주로 먹었는데.. 그날은 집에 코코아 가루가 떨어지고 없었다. 아쉬워하던 내가 엄마께 커피 없는 커피를 타 달라고 했다. 엄마는 그러면 맛이 없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그냥 달달하고 밍밍한 우유맛인데 그걸 먹으며 좋아했었다.
내가 커피를 마신 건 고등학교 다니면 서다. 늦게까지 공부할 때 졸지 않으려 마셨다. 사실 공부보다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을 더 열심히 했다. 친구들이랑 핸드폰으로 통화도 하고.
매일 늦게까지 공부하는 줄 알던 부모님께는 죄송하다. 그냥 방문을 닫고 공부해요 한마디면 아무 간섭이 없으셔서 나는 늘 공부한다는 핑계를 되었다. 알고 계시면서도 모르는 척하셨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눈감아 주는 것처럼..
언제부턴가 밀크커피가 살이 찐다고 방송에 많이 나왔다. 그래도 맛있는 커피를 포기하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집에서는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그렇게 커피 사랑에 빠져서 살았다. 바닐라라떼, 카러멜마키아또도 좋아한다.
지금은 또 아메리카노에 목을 맨다. 오죽하면 얼죽아라고 말하겠는가?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누가 만들었는지 딱이다. 그래도 가끔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차가운 것이 싫어진다.
남편은 밀크커피 마니아라 아메리카노는 그저 쓴 물 같다고 싫어한다. 나보고 이 쓴 걸 왜 마시냐고 물으면 오빠는 왜 믹스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이렇듯 우리는 커피 취향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르다. 한참 더운 날 운전하는 남편에게 커피를 한 모금 건넸더니 사약을 내리느냐고 웃는다. 마실 음료가 내가 산 아이스커피뿐이라도 안 먹고 버티는 남편이다.
결혼하고 조금씩 맞혀서 가고 있다. 우리가 동시에 100% 같아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생각해 본다. 오늘 아침 눈뜨면서 함께 밀크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오늘은 쌉쌀한 아메리카노보다 믹스커피가 생각난다. 하루에 두 잔은 많은데 생각하면서도 두 잔까지는 괜찮겠지? 하는 모순을 보이는 나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닮아간다.
오늘은 둘째의 11번째 생일이다. 원래 둘째는 계획이 없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점집에 갔다. 무조건 둘째는 아들이니 낳으라는 말에 태어났다고 하면 나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맞다. 아이가 복덩이라 지금보다 다 좋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을 구슬려 둘째가 태어났다.
가끔 남편은 아들에게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그때 이야기를 한다. 둘째는 나에게 유독 더 살갑게 군다. 우리 부부는 원래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이가 이쁘고 계속 마음이 간다. 내 아이라 그렇겠지만 정말 다른 세상을 만났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함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 신기하다. 내가 이 아이들로 버티면서 오늘까지 큰일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
나는 자존심은 있지만 자존감이 약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자존감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나의 못난 자아가 불쑥 나와서 두 아이를 질투하기도 한다. 한 번씩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혼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내 모습과 기억 속 어른의 자리에 있는 나를 보고 놀라 현실의 나로 돌아온다. 다시 정신을 차린다. 아이들에게 언제 그랬냐 할 다정한 엄마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의 다정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온전히 좋은 엄마는 아니라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한결같은 엄마가 된다고..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말한다. 그 순간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느끼고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할 일이 참 많다. 상처 받은 어린 나를 돌아보고 치유한다. 우리 아이들도 바르게 자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남편도 챙겨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계속할 수 있는 끈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밀크커피 한 잔이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커피가 차갑게 식었다. 아들의 생일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