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고 울면서 계속해본다.
5년 가까이 지난하게 달려오던 박사 과정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밌는 건, 결승점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조급해지고 다리에는 힘이 쭉쭉 풀린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지나온 길보다 더 멀고 힘들게 느껴진다.
박사 과정은 빈 활주로에서 혼자 뛰는 마라톤
가끔 10K 마라톤 이런 걸 뛰면, 그래도 결승선까지 같이 뛰는 페이스메이커나 다른 러너들이 있지만, 이놈의 박사과정은 텅 빈 활주로에서 혼자 뛰고 있기에 (간혹 내 cohort, a.k.a. 동료가 보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활주로에서 뛴다) 마음과 체력을 잘 관리하는 게 정말 큰 관건이다.
항상 박사과정 오리엔테션때마다 교수님들도, 선배인 입장에서 나도 "박사과정은,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는 마라톤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무슨 말이냐면, 하루 이틀, 아니, 6개월 일을 몰아서 한다고 바로바로 내 분야의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고, 지도교수 혹은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동료들을 의식하거나, 혹은 스스로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열심히 달리는 경우도 많다. 수업도 듣고, 내가 관심 있는 교수님께 연락해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하고, 장학금과 스타이펜드를 받으니, research assistant or teaching assistant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내 단독프로젝트도 해야 하고.
나는 어떤 특징과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그렇게 잘 해왔는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No, 혹은 못하겠다는 소리도 하고, GRA는 내 연구분야와 큰 관계가 없다면 정말 월급을 위한 '일'로만 처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럭저럭 지치지 않고 나와 내 지도교수의 연구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달려왔던 것 같다. 아마, 산보 정도? 그래서 친구들과 테니스나 볼더링도 하고 캠핑도 가고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하니 조급해지고, 잡마켓을 같이 하고 있으니, 결승선을 지나자마자 바로 날아올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380, 747과 같은 대형 점보 비행기가 될지, 소형 전용기가 될지, 아님 인기 많은 777, 787, 350이 될지... 아, 320, 737도... Embrader도.... (갑자기 항덕...). 쉽게 말하면, 항공사에서도 다양한 체급과 수요에 맞춰 기종들을 운영하는 것처럼 각자의 역량과 역할, 그 쓰임에 맞는 장소들이 있는 다는 것.
이렇게 부족해도 괜찮아?
학위논문도 이제 막바지이다. 마지막 데이터 정리하고, 기존에 써놓았던 드래프트를 최종 수정하고 있다. 내게 1년의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각 에세이를 학회에도 발표하고 저널에 투고도 해보는 건데, 일단 바로 졸업을 해야 한다.
현타가 오는 것은, 막상 박사라고 하는데, 내가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아?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라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드는 것이다. 막상 스스로도 박사라는 것은 내가 아는 거 한 줌 제외하고는 다 모른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막상 중요한 시기가 닥쳐오다 보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갑자기) 든다.
종종 다른 박사과정 유학생들의 글이나 유튭 채널을 찾아본다. 재밌는 것은, 박사과정 초반에 박사과정에 지원하는 꿀팁이나 vlog 등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의외로 중간 이후의 삶이나 고뇌 혹은 그 과정들은 중단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좋던 싫던 일단 마무리부터.
사실 그렇다. 박사과정 하나, 논문 하나 쓰기 어려운 시간인데 이걸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나 싶기도 하다. 사실 중간에 그만두는 (혹은 잘리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이로 행복한 박사과정은 무엇일까. 이건 나보다 1년 먼저 졸업한, 무려 4년 만에 졸업하고 교수가 된 내 동료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길이 보인다. 다들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나의 그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고, 내가 잘하던 못하든 간에 일단 하던걸 계속하고 마무리하는 게 최고라는 것을 본다.
사실, 그 친구의 연구가 나에게는 그렇게 와닿지도,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연구가 꼭 필요한 분야가 있고, 나는 그 인접 분야가 아니라 그렇게 평가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친구는 꾸준히 열심히 했고,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도 배워가는 시기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그리고 학위논문은 그 이후에 peer review process에 들어가면 또 많은 변화와 수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너무 잘해야 한다거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시기를 놓치거나, 다운되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울면서, 잘 마무리하는 게 가장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아이비리그 학교를 다니며 치열하게 연구에 미쳐서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연구자의 삶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도 모르게 이 사회와 학교에 기여하고 있음에 잔잔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물론 잘해야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되 혼자만의 판단 치를 높게 설정하고, 달성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그만두지는 말고, 일단 지금 해야 할 일,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조금씩이라도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나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다. 그래, 울면서 해야지. 곧 9시다. 이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