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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Aug 11. 2024

[시] 공[空]


공[空]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하다.


부패 되어가는 속도, 역하고 악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

누군가를 향한 의도적인 소문만큼이나 빠르다.

어찌하여 좋은 향기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없는가.

음식물 쓰레기를 보는 일은 내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의 한 속이 이렇게 역겨울 수가 있다니,

사람의 속도 매일 비우다보면

깨끗이 정리된 개수대처럼,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겠지.

나를 비워두고 싶어졌다.

우걱우걱 씹어먹는 책 속의 활자도,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차가운 술의 넘김도,

사고 싶은 물건들의 목록도 모두 거추장스러워졌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어졌다.

그게 무엇이든

나를 지나가더라도

나는 고요해지고 싶었다.


함께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공[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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