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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Aug 20. 2024

[시] 희망사항

<희망사항>



옷장에서 사라져도 그만인 옷이 하나 있다.

나 몰래 누가 갖다버려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옷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정리하지는 못하는 것.

옷걸이에 걸 때 예감했다. 

이 옷은 옷걸이에 매달린 채, 바닥으로 내려올 일이 없겠구나.

검정과 녹색 잔꽃이 어우러진 긴 원피스는 

걸을 때마다 발등을 스치고, 허리를 꽉 붙들어맨 탓에

늘 배에 힘을 주어야했다.

옷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당신이 손을 잡아주면

아, 내 꿈은 공주가 되는 거였어, 

하지만 나는 늘 엎드려 바닥을 닦아야 했지.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가 이불에 토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옷을 벗기고,

씻겨 새옷을 입힌 후, 욕조에 이불을 넣고 토사물을 씻어내리는,

나는 그냥 엄마였지.

옷장을 열고 날씬한 원피스를 바라볼 때면

나는 아득한 먼 옛날을 그리워하는 기분이 들었네.

하지만 지금 당장 갖다 버려도

그만인 것.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

누가 대신 버려준다면

못 이긴 척 잊어버리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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