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서 사라져도 그만인 옷이 하나 있다.
나 몰래 누가 갖다버려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옷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정리하지는 못하는 것.
옷걸이에 걸 때 예감했다.
이 옷은 옷걸이에 매달린 채, 바닥으로 내려올 일이 없겠구나.
검정과 녹색 잔꽃이 어우러진 긴 원피스는
걸을 때마다 발등을 스치고, 허리를 꽉 붙들어맨 탓에
늘 배에 힘을 주어야했다.
옷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당신이 손을 잡아주면
아, 내 꿈은 공주가 되는 거였어,
하지만 나는 늘 엎드려 바닥을 닦아야 했지.
밤새 고열에 시달리다가 이불에 토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옷을 벗기고,
씻겨 새옷을 입힌 후, 욕조에 이불을 넣고 토사물을 씻어내리는,
나는 그냥 엄마였지.
옷장을 열고 날씬한 원피스를 바라볼 때면
나는 아득한 먼 옛날을 그리워하는 기분이 들었네.
하지만 지금 당장 갖다 버려도
그만인 것.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
누가 대신 버려준다면
못 이긴 척 잊어버리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