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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전문가 Jan 10. 2019

잔소리꾼과 쿨엄마 사이에서

함께 숨쉬는 자유를 꿈꾸다

“뚜껑을 닫아놔야지. 이렇게 하면 다 마르잖아!”

색칠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아이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잔소리를 내게 하고 있었다.

아주 단호한 표정과 말투로.

종종 사인펜 뚜껑을 내도록 열어놓는 아이에게 내가 주로 하는 말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황급히 변명한다. “아니, 금방 다시 쓸거라 안 닫은 건데?!”

아이는 마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하는 느낌으로(왠지 되게 얄미움) 계속 훈계의 시간을 이어갔다. “그래도~ 사인펜은 뚜껑 열면 금방 마른단 말이야. 전에도 몇 개 버렸잖아~~!!”


겉으론 알겠다 했지만 속으로 ‘아쭈~’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벌써 권위적인 마음이 들통남과 함께, 왠지 모를 억울함이 밀려왔다. 일부러 안 닫은 것은 아니었는데… 그러는 중에 문득 아이는 얼마나 자주 억울하게 살고 있을까(?) 미안해졌다. 아이 말을 듣지 않은 채 일방적인 설교를 하던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었다.


역시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아 이, 이게 아니지. (출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성격이 무르기도 하고, 무서운 아빠 밑에서 자라 큰소리 내는 것도 싫어해서 아이를 무섭게 혼내는 일은 아직 별로 없다. 아이가 크게 혼날 일을 한 적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 만 4년도 안 산 꼬맹이에게 실수는 일상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 그런데 다음번에는~.” 되도록 차분한 말투로 설명하고 돌아서면 꽤나 괜찮은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아이 기분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 했다기보다는 ‘따뜻하고 포용적인 엄마’라는 자기만족의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참았고, 이해했다. 몸이 피곤하거나 여유가 없을 땐 혼을 내거나 구구절절 잔소리를 읊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내 말 듣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잔소리~"

사랑의 잔소리라고들 한다.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 또는 너 잘되라고 하는 얘기라 한다. 그런데 그 잔소리 때문에 미치겠다는 초등학생들이 널렸고,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너무 괴로워 연을 끊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더 이상 상대가 ‘잘 될 수 없는’ 잔소리인 것이다.

똑같은 사랑의 표현이라 해도 잔소리는 쉽다. 하는 행동을 보면서 생각나는 그대로 입을 쉬지 않으면 된다. 계속 가르치고 훈계한다.

기다림은 어렵다. 상대를 전적으로 믿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더 높은 수준의 사랑 표현이다. 가르치거나 참견하기 전에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것. (아이가 당장 티셔츠 머리구멍만 못찾아도 도와줄까 안절부절하는 나는 이미 그른 것 같... )


거기 누우면 안돼. 아저씨가 이놈해~!! 잠바 똑바로 입어 추워~~!!! 엄마 말 듣고 있지?... 자는 거 아니지?


나의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안 하든지, 집에서 어떻게 있든지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른이 되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막(?) 큰 것은 아니다.커가면서 사회 규범이나 친구관계, 생활 습관 같은 것은 절로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시간에 있어서는 특히 칼 같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엄마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학창 시절 지각은 거의 연례행사 정도였다. 지금도 엄마에게 고마운 점을 떠올리면 많은 것들 중에서도 ‘잔소리 없이 나를 믿어준 것’이다. 물론 일하랴, 살림하랴 너무 바쁘고 힘들어 우리를 돌볼 여유도 별로 없으셨겠지만 잔소리라는게 시간이 없다고 안 하고 마는 그런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열정 없이는 할 수 없는 분야가 잔소리다. 그렇게 자란 나는 당연히 쿨하게 아이를 믿어주고 잔소리 안 하는 엄마가 될 거라 생각해왔는데 아이에게 ‘사인펜 뚜껑 훈계’를 듣고 나니 그야말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막 다섯 살. 아직 희망은 있다. 기억하자.



-   저 사람은 우리 집에 사는 작은 사람이지, 멍멍이가 아니다.

-   된다 안된다를 읊기 전에 해야 할 행동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말자.

-   부모의 가르침은 말보다 행동이 수십 배 효과적이다.


이렇게 주절거려보지만 하룻밤 다짐으로 잔소리 안 하는 엄마가 될 수 있겠는가. 장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서른 중반의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최적의 비겁함을 장착)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습관적 잔소리꾼의 면모를 탈피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안 그래도 야무진 딸이 나중에 커서 잔소리 복수혈전을 하는 상상, 잔소리 폭격에 시들시들 맥 못 추고 있을 늙은 나를 생각하니 벌써 들숨과 날숨이 격해진다.



“들어봐, 나의 사랑은 함께 숨 쉬는 자유. 애써 지켜야 하는 거라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지.”

캬! 가사 좋고.

남녀의 사랑 노래지만, 오늘은 맥락 없이 “함께 숨 쉬는 자유”에 밑줄을 쳐보련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도 “함께 숨 쉬는 자유”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정답대로 가 아닌 아이의 모습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함께 숨 쉬는 자유, 우리 모녀의 사랑도 그렇게 단단해져 가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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