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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Dec 06. 2021

가마솥 찐빵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앙금을 품은 주식.


빵 중에 찐빵을 제일 좋아하는 나.


호빵도 제철을 만나 요즘 자주 먹게 되는 간식 중에 하나다. 슈퍼마켓 빵 코너에 진열된 호빵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전자레인지에도 돌려먹고, 에어 프라기에도 돌려먹고, 덥혀먹는 방법에 따라먹는 재미도 조금씩 다르다.







에어 프라이기에 구운 호빵




할머니께서는 전날 불려놓은 팥을 삶으신다. 팥을 삶으시는 거 보니 오늘은 밥이 아닌 밀가루를 이용한 끼니를 만드시는 게 분명하시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팥을 삶는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설렌다. 잠시 후 밀가루 포대에서 두어 바가지를 퍼 담으신다. 동시에 가마솥에 물이 따끈하게 데워진다. 이스트를 녹이기 위해 따뜻한 물을 가마솥에서 퍼담아 손맛을 이용하셔서 이스트를 녹여주신다. 어깨 너머로 할머니의 모든 모습을 내 눈에 담기 바쁘다.



커다란 양푼 대야에 이스트 녹인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만드신다. 질퍽질퍽한 반죽은 손에 달라붙어 좀처럼 우아하기 글렀다. 잠시 후 반죽이 완성되자 물을 덥히던 아랫목은 쟁반을 덮은 양푼 대야의 몫이 되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대야 속 반죽은 잠시 발효의 과정을 가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께서는 숟가락 하나를 들고 담요를 걷고 쟁반을 들추신다. 따끈한 아랫목 덕에 반죽은 거미줄처럼 길가란 줄을 세워 발효가 잘되었음을 알려준다.


휘휘 젓는 숟가락에 반죽은 쪼그라들고, 두 번째 발효를 위해 다시 쟁반을 덮고 담요도 살포시 덮어 두신다.



그사이 난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놀다 할머니의 부르심에 방으로 달려들어왔다. 어느덧 방안엔 찐빵을 만들 준비가 거의 완성되었다. 동그란 밥상은 다리를 접고 작업대를 대신해 주었고, 삶은 팥은 앙금이 되어 한편에 숟가락 두 개 꽂혀 대기 중이다. 반죽은 덧가루를 이 형제 삼아 툭툭 떼어 동글 돌글 그릇을 만들어 앙금을 듬뿍 넣어주고 다시 뒤집고 앙금이 삐져나오지 못하게 꽁꽁 싸매어 작업대 한편에 자리 잡아준다.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옆에서 거들어 드린다. 서툴렀던 찐빵 빚는 모습은 어느 순간 제법 능숙하게 빚는다.



찐빵이 작업대 위에서 중간 발효를 거치는 순간 발효는 계속 진행되기에 삐뚤빼뚤했던 찐빵이 탱글탱글 빵빵하게 발효된다. 적당한 간격은 필수다. 간격 조절이 실패하면 중간 발효 과정에서 붙어버려 떼려다 발효가 꺼져버리면 모양은 엉망이 되기도 한다. 덧가루 묻혀가며 동글동글 뽀얀 찐빵을 만들면 기분이 좋다. 반죽을 조물조물 만지며 느끼는 정서적 안정도 돌이켜보니 좋았던 거 같다. 어느 순간 요령이 생기면 손바닥에 반죽도 달라붙지 않는다.



찐빵을 빚으며 팥앙금을 한 숟가락 퍼먹는다. 달콤한 앙금은 한 번으로 끝날 수없다. 찐빵 한 개 빚고 앙금 한번 퍼먹고, 또 한 번 퍼먹고, 달콤한 앙금이 어느 순간 더 먹을 수 없을 만큼의 달콤함이 될 때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이쯤 되면 찐빵의 매력이 반으로 뚝 떨어진다. 달콤함을 한계를 넘은 것이다. 그리고 나면 묵묵히 찐빵 빚기에 집중한다.



찐빵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쯤 할머니께서는 찐빵을 찔 준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 가마솥에 깨끗한 장작을 삼발이 삼아 가로로 눕히고 적당량의 물을 붓고는 이내 불을 지피신다. 하얀 면포를 깔고 나면 작업대 위에 찐빵을 쟁반으로 조심조심 옮겨 담으신다. 이젠 가마솥으로 들어갈 차례. 그사이 난 마지막 찐빵까지 만들어 뒷정리를 도와드린다. 작업애를 대신하던 밥상을 닦고,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들도 닦으며 청소한다.



가마솥으로 들어 들어가는 건 할머니께서 하신다. 뜨거워진 가마솥에 어린 내가 다칠까 걱정되는 부분이시기에 그랬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겐 그 일을 시키지 않으신 이유가 그랬던 거 같다. 찐빵이 수증기를 한번 내뿜고 찌는 과정의 순간들이 너무 오래 거리는 기분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부엌을 들락날락 언제쯤 할머니께서는 찐빵을 꺼내실까? 기다림이 길게 느껴진다.



잠시 후 찐빵이 완성되었다. 와~! 하며 찐빵을 커다란 쟁반에 담고는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와 동생도 오빠도 모두모여 찐빵을 하나씩 입에 문다. 오늘 저녁은 찐빵이 끼니를 해결해주었다.



중간중간 퍼먹던 앙금 덕에 찐빵에 들어갈 앙금이 부족하다. 그럴 때면 빈속을 흑설탕이 대신해 주었다. 흑설탕 들어간 찐빵은 사실 앙금 들어간 찐빵보다 매력적이지 못했지만, 찐빵을 얼마나 먹었을까? 그냥 먹기 재미없어서 일까? 배가 불러져서 일까? 찐빵 하나를 집고 손바닥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그런 모습에 할머니의 꾸짖음이 어김없이 뒤따르신다. 복 없게 먹지 말라시며 나무라시는 할머니셨다. 납작하게 만들어 먹는 찐빵도 나름 맛있게 느껴졌는데 말이다.



찐빵으로 시작된 나의 빵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때 할머니와 빚던 찐빵이 이리 그리울 수 없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빚던 찐빵엔 끼니를 해결해야 할 할머니의 걱정과 손녀와 함께 빚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정이 담겨 그런 것일까?



찬바람이 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 찐빵이 그리운 오늘.


겨울 어느 날의 풍경이 그려지는 하루가 슈퍼마켓 호빵에 새록새록 샘솟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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