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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고 향기롭게 Feb 27. 2022

11년 후에 다시 만난 쌀국수

지난주 주말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첫아이와 오롯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사춘기를 앞둔 아이는 좋아하는 BTS 멤버의 생일이라며 생일 이벤트 카페를 가고 싶다고 한다. 집 근처 이벤트 카페를 다녀온다는 아이를 뒤따라 나섰다. 우리의 발걸음은 카페가 아닌 좀 더 먼 곳으로 나가보자며 무작정 지하철을 탔다.


세 살 터울 남동생이 있는 첫째는 엄마와의 단둘의 시간을 반긴다. 얼마만의 시간이냐며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한껏 들떠있다. 지하철 타고 달린 곳은 집 근처 쇼핑몰 센터. 입학을 앞둔 아이의 옷도 마땅치 않아 두리번 입을만한 옷을 둘러보았다. 사실 아이의 옷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른 건 오늘이 두 번째이다.

주변에서 물려받은 옷으로 거의 입혔던 아이가 스스로 옷을 고르고 입고 싶다고 하는 옷을 입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 일이었다. 고마운 지인들이 있어 그것 또한 복인 듯했다. 맘에 드는 옷을 두어 개 고르고 살짝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지하 식당 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른 메뉴는 쌀국수. 새로운 거 먹는 걸 도전하기에 왜 이리 서툰지 모르겠다. 익숙한 걸 먹기 급하다. 마침 때가 지난 시간이라 식당 좌석은 한가롭다. 적당하고 편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는 팟타이를 고르고 난 따끈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를 골랐다.


주문한 메뉴는 허기진 배고픔을 금방 채워주려고 하듯 제법 빨리 나왔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려는 순간, 이 모습이 익숙한 한 장면으로 스쳐 지난다. 다만 그 장면에 다른 건 메뉴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라는 것!


11년 전 첫째의 문화센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 유모차 안에서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쌀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여 먹었다. 혼자 먹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은 나에겐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 허기짐은 혼밥도 할 수 있게 했다. 유모차 안에 잠든 아이 깰세라 오롯이 쌀국수 그릇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한 젓가락 들이키고 유모차 안에 아이 들여다보고, 또 한 젓가락 들이키고 잠든 아이 확인한다. 쌔근쌔근 잠든 아이 덕에 쌀국수 한 그릇 뚝딱 비운다. 둘째 입덧은 속을 채우지 않으면 울렁임이 오기에 속을 채우기 바쁘다. 이런 걸 먹는 입덧이라고 했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나니 입덧이 사그라들었다.  울렁거림은 얼큰한 국물 한 모금에 휘발되어 사라진다.



오늘은 첫째와 쌀국수를 앞에 두고 유모차 안에서 쌔근쌔근 잠들었던 그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땐 한그릇이였는데 지금은 같은공간 같은자리에 나란히 두그릇을 시켰다. 첫째의 기억 속에 없을 이야기에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이 시킨 메뉴에 만족한다. 이 아이가 언제 이리 커서 나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대견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대화가 제법 잘 통하는 편인 첫째와의 케미 속에 밥 먹고 어딜 갈까? 를 고민하며 나눈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낀 일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엔 계획대로 이벤트 카페도 들려 아이의 눈높이에 세상을 들여다 보기도하고...

평범한 일상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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