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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고 Oct 20. 2023

쓰레기통 비우기



   쓰레기통에 빈구석이 없었다. 비염의 흔적이 반 이상을 차지했고, 구겨 넣은 우편물 두 개와 약봉지가 알뜰하게도 빈틈을 메우고 있었다. 용량을 초과할 정도로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들이 흔든 캔맥주처럼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지만 쓰레기 더미 위로 코 푼 휴지를 휙 던지고 또다시 꾹꾹. 이번이 진짜 마지막! 다음엔 진짜 비운다.



   회사를 나와 강원도로 오고,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엔 혼자인 게 좋았다. 하지만 점점 ‘나’라는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다. 비타민 과다처럼 자아 성찰 과다에 빠지고 만 것이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휴지에 풀어 대는 콧물처럼 일이 안 풀릴 때마다 속으로 뱉는데, 그것이 쌓이고 싸여 쓰레기통처럼 빈틈없이 마음을 매워 버렸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정신머리는 유랑민처럼 갈 곳을 잃었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조차 손에 안 잡혔다. 



   ‘나는 왜 이럴까’ 따위의 콧물 같은 내 탓은 언제나 안 좋은 상황에서 뱉어진다. 예를 들자면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인간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상황에서 ‘나는 왜 이럴까?’라고 물으면 부족함과 미숙함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이 마음 중앙에 박힌다. 그럼 곧바로 소극적으로 변한다. 누가 자신의 부족함과 미숙함을 티 내고 싶어 할까. 숨기기 위해 남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 순간 주체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할 나의 자유는 가볍고 가엽게 주눅들어 버린다.



   도시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던 남 눈치를 이곳, 강원도에선 안 보고 살 줄 알았는데 습관이 무섭다. 이게 나만의 푸념은 아니다. 도시생활자들이 겪는 우울감과 외로움도 엇비슷하다. 사람과 사람, 건물과 건물 사이가 너무나도 가까운 도시에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란 힘들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내면이 과밀해저서 답답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광활하고 탁 트인 바다가 있는 이곳으로 왔는데, 공간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 마음도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더라.



   우리 마음속엔 여유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주눅들 때, 남 눈치가 아닌 자신을 다독여 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과도한 자아 성찰과 내 탓도 정도껏 해야 한다. 타인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나 자신과도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단 뜻이다. 쓰레기통도 다 차기 전에 미리미리 비워야 하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다. 자아 성찰은 휴지처럼 없어서는 안 되지만 한번 쓰고 나면 흘러넘치기 전에 비워줘야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니까. 자책했던 일들도 결국은 여러 사람과 여러 상황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남 탓도 하고, 한 발 뒤에 서서 ‘뭐, 어쩌라고’ 정신을 가져야 펑 뚫린 코처럼 시원시원하게 숨 쉬며 살 수 있는 법이다. 



   하다 하다 안 되겠다 싶어 결국 휴지통을 뒤집어 종량제 봉투에 탈탈 털어 넣었다. 어른이 돼서 혼자 산 지도 몇 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서툴고 어렵다. 집 안 일도 그렇고, 나 자신을 챙기는 일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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