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장길이가 내려왔다. 뉴욕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소식도 없이 한 달여가 지나서야 인스타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생사확인만 돼도 다행인 놈이지만, 인스타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무언가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모양이었다. 때마침 나도 호주를 간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 터라 길이도 뉴욕 가지전, 나의 배웅처럼 부산으로 온다고 했었다. 그 참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들어보려는 심산이었다.
굳이 먼저 꺼내지 않아도 길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들었다. 예전,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길이도 내가 본인과 비슷한 일을 겪은 걸 알고 있기에, 먼저 입을 열었던 것이다. 본인으로선 세상 힘든 시련이고, 상처 입는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당시엔 죽을 것처럼 힘들고, 잠도 오지 않아 매일 술을 찾곤 했었다. 아주 사소한 감정의 촉매는 폭발적으로 우울과 분노를 구분 없이 터트렸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감정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도 꺼려졌었다. 짧은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 속에 몇 개월을 덩그러니 방치돼있었었다.
이제는 지난 일인 그 상황을 장길이가 겪고 있었다. 그 당시엔 힘들었지만, 그때의 상처가 담금질된 무기가 되어 뻗어 나왔다. 길이를 진심을 다해 공감할 수 있었고,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덤덤하게 그렇게 하고 있는 스스로가 놀라울 만큼 그 당시의 아픔이 이제는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돼있을 거라고 했다. 그땐 그 말이 들리지 않았지만,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도 맞는 말이다. 헛된 상처와 경험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상처에 난 굳은살을 내보이며 똑같은 상처를 입어 주저 않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헛된 삶은 있을 수 없다. 세상에 혼자가 아닌 이상 분명히도 우리의 모든 순간은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