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극복기

by 탈고

잠이 오지 않았다. 불 꺼진 방은 미래에 대한 자문을 강요했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코로나는 점점 더 심해지고, 호주대사관은 그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기는 왜 이렇게 힘차게 나는지, 선풍기는 왜 1단과 2계 사이에 1.5단은 없는지, 혹시 그런 선풍기가 출시되었는지, 갑자기 친구가 추천해준 드라마가 완결은 났는지, 냉동실에 넣어둔 먹다만 피자는 잘 있는지, 세계 3대 미스터리가 뭐였는지, 유명인 중에 코로나가 걸린 사람이 있는지, 혹시나 인터넷에 입국 금지 해제 뉴스가 뜨지는 않았는지. 항상 그런 건 새벽 2시 즈음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자 몸에 변화가 생겼다. 일정하게 자는 것도 아니고, 수면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구내염과 혓바늘을 동반한 얄미운 고통이 시작된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면역력이 뭐야? 할 정도로 잔병치레가 없었는데 이제는 아프다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질 나이로 다가가고 있는 것만 같다. 아무튼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입술에 엄지손가락 만한 구내염과 혀에는 다섯 개의 혓바늘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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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파열되고, 살이 찢어지고 하는 사고도 당해봤지만 그런 큰 고통과 직면하면 의외로 초연해진다. 너무나 확실하게도 병원에 가야 되고, 치료를 받으면 조만간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 탓이요'라며 꾸역꾸역 출근해서 얻게 되는 업무 스트레스가 다친 곳보다 더 고통스럽게 변하는 일중독자 전용 진통제를 투약한 덕분일까. 언제나 큰 병엔 강한면모를 보이는 대한민국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그맣고, 얍삽한 이 녀석들은 입술에 딱 붙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소소한 고통을 안겨줬다. 큰 한방의 어퍼컷 보다, 계속되는 쨉에 나가떨어지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매콤한 짬뽕을 먹을 때, 샤워하다 물줄기로 입을 헹구려 할 때, 무의식 중에 입술 뜯듯 구내염을 물어뜯을 때, 자기 전에 목마를 때 등등. 빈틈을 정확히 노린 쨉은 나를 그로기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호주를 가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혀로 입술에 난 구내염을 소독하듯 핥고 있더라. 어이가 없어서 진짜. 그건 잠자리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직 아려오는 입병에 집중하면서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지겠.... 하면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어느 순간 잠든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잘 잤다. 잠 못 자서 생긴 입병 때문에 꿀잠을 자버렸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안 먹던 영양제와 쉽게 거르던 끼니도 착실히 챙겨 먹었다. 어디 그뿐일까. 운동 안 해서 그렇다며 툭 던 지 아버지의 말에 쉴 거면 팍 쉬자는 마음을 접고 헬스장도 갔다. 그렇게 내 아픔에 집중하다 보니 그 원이 해결된 것이다. 참 웃기다. 나 자신을 조금만 위했다면 아플 일도 없었을 텐데, 그전에 조금만 더 스스로를 직시했다면 불면증도 안 왔을 텐데. 참 미련하고 웃기다.


잠을 푹 자서 머리가 맑아진 탓일까? 코로나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호주에 대한 미련 때문에 곧 괜찮아 질거라, 곧 입국 거부가 풀릴 거라 합리화하고 있었다. 꾸역꾸역 호주를 가게 되더라도 일자리는 물론 당분간은 한국인이 설자리가 없을 거란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시했던 것이다. 현실적이로는 당연히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워홀이라는 선택을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었고, 미지의 세상에 3년 동안 홀로 던져질 나를 상상하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을 잘 수없었던 이유도 그런 호주를 포기하고 또 다른 선택지를 찾아 나설 자신이 없어서였다. 용기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는 거라곤 넘지 못할 벽 앞에 움츠려 앉아 하늘에서 사다리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호주발 뉴스만 뒤적거릴 뿐이었다.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려고 했는데, 터닝포인트가 자라지 다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나의 앞날이 두려웠다. 뉴스를 뒤적이는 시간과 스스로 등 돌린 현실이 길어질수록 나의 불면증도 길어진 셈이다. 결국 입술이 터지고 나서야 어디가 아파서 곪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주가 아닐 뿐, 진짜 미지의 세상에 홀로 던져져 있었던 건 그 순간과 그 나날들이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과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고집이자 틀이었던 것이다. 호주가 아니면 안 돼, 우리나라는 안돼, 무조건 호주로 가야 해. 그래야만 뭔가 좋은 길이 열릴 거야라는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외면하게 했고, 현실을 거부하게 했다. '그게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이 '그게 안되니까 나는 안될 거야'라는 비관적인 마인드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후로는 잠이 잘 왔다. 나를 아프게 하는 나에게서 한벌 벗어나니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것을 포기했기에, 갔어야 했던 길이 막혀있기에 어디로 가든 새로운 길이다. 그 위 길에서 필요한 유일한 건 나침반뿐이고, 길을 잃었을 때 들어야 볼 나침반은 어디로 가야 할지가 아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아야 하는지를 알려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사관이 내놓는 뉴스에게 자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자문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기 위해 방향을 찾는 것이 아닌, 뭘 찾기 위해 방향을 찾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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