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도 배달된 냉동 닭다리 살을 ‘적당히’ 해동시켰다. 너무 녹아도 자르기 힘들기 때문에 그 적당함은 무던히도 잘 손질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령이다. 적당히 해동된 냉동 닭다리살을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자르고, 70g식 소분했다. 소분된 것은 1회용 비닐봉지에 들어갔다. 가장 작은 비닐봉지지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그 위를 둥둥 떠다닐 수도 있을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각하니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차곡차곡 쌓아 냉동고에 넣는다. 그리고 200g 정도 남겨둔 냉동 닭다리 살을 먹기 좋은 크기고 잘랐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팬에 얼마만큼 ‘적당히’ 기름을 두르는지는 신중하고도, 묘한 것이다. 완성도의 시작이자, 마무리에 있을 기름짐과 느낌함과 그것을 먹는 살찐 나에겐 더더욱 신중과 묘함을 주는 작업이다. 그 이후에 도마에 잘린 분홍빛 살을 쏟아 내듯 팬에 붓고 ‘적당히’ 후추와 소금을 뿌려준다. 사실 익음의 정도는 먹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뿐. 아침 일찍 잘도 닦아 놓은 윗 어금니와 닦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아랫 어금니 사이에 양념된 그것을 사이에 두고 씹어봐야 안다는 소리다. 유난히도 윗 이빨을 신중하게 닦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접시에 담으며 혀로 입술 전체를 한번 닦아 본다. 그리고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여전히 누군가에겐 지적받는 젓가락질로 집어 먹는 닭 다리 살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옛 여인의 편지를 찾아 집어 드는 손짓과 비슷하다. 은은한 육즙을 상상하지만 막상 꺼내어 보면 전혀 신선하지 않는 오래된 냉동의 고독감, 맛. 뭐 그런 거.
외로움과 고독은 엄연히 다르다. 외로움은 내 것과 누군가의 빨래가 섞인 것을 나 혼자 너는 것이고, 고독은 나만의 빨래를 혼자 열심히 너는 것이다. 아주 힘껏 탈탈 털어 최대한 구김이 안가 게, 최대한 깨끗하고, 향기롭게 세탁한 그것을 열심히, 아주 열심히 말이다. 외로움은 2인분의 밥을 지어서 혼자 먹는 것이고, 고독은 나만을 위한 밥을 지어먹는 것이다. 아무 미묘하지만, 확실히도 다른 것이다.
언젠가부터, 따지고 보면 외로움과 고독이란 것을 구분할 수 있었던 그때부터 나는 적당한 고독을 즐기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많은 사람들과 있었으면 반듯이 고독한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거나, 책 또는 만화책을 봤다. 조깅을 할 때도 있고, 혼자 밥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외로움을 적당히 잘 피하며 지냈다.
점점 고독과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이곳은 의외오 다른 어느 곳보다 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살고,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정작 그 사람들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기회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빨래를 함께 하지만, 그 속엔 내 빨래가 없는 거라고 해야 하나, 15인분의 밥을 하지만 내가 앉을자리는 없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럴수록 더 많은 고독을 발명하고, 발견하며 지내야 한다. 시간 날 때, 틈 날 때마다 1인분의 밥을 만들고, 내 양말을 손빨래하며 내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독은 오롯이 나의 것이기에 그것마저 타인에게 젖어 녹아내리는 외로움으로 변하면 안 된다. 세상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는 한 덩이 남은 냉동 닭다리살의 전혀 분신 선하지 않은 완벽한 양념 맛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