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기분전환을 하고 싶어 부산으로 향했다. 결과는 실패. 예상 기록의 절반밖에 하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찝찝함과 속상함 속에 짜증을 잔뜩 숨긴 체 부산이라는 경기장을 박차고 나왔다.
국내선이지만, 마인드는 국제선처럼 하고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수정이를 기다렸다. 같은 부산 출신의 이 동갑내기들은 고향에서 각자 휴일을 즐기고 우연히 같은 날 강릉으로 복귀하게 되어있었다. 돌아올 땐 비행기를 타자. 그게 수정이와 나의 결정이었다. 코로나 덕에 떡락한 비행기 값은 KTX의 1/4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구름을 대지 삼아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지평선 넘어의 태양빛. 사방으로 뻗어가는 빛의 한 줄기가 비행기에 걸려 나의 시아를 하염없이 잡아당겼다. 그 끝없는 한 장의 풍경이 일만 개의 단어보다 더 많은 밀도로 나에게 밀려오고 있었다. 하늘과 구름과 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 공허 속에 위로가 있었던 탓일까.
비가 오고 있었다. 부산과 강릉엔
그 사이의 하늘 위는 놀랍도록 맑고 아름답다는 사실이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태풍이 지나가고 마지막 남은 축축함을 쥐어짜듯 부슬비가 내리는데 그 사이를 오가는 길은 꽃길이 따로 없다니, 왠지 신신애 씨의 '세상은 요지경'이 기내에 울려 퍼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데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데로 산다.
요즘 나는 못난 편에 속한다. 하파 서프의 사장님과의 트러블과 그로 인해 떠나가는 사람들을 먹먹한 마음으로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부산과 강릉처럼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야무지게도 내리는 부슬기가 나의 심장 위로 곤두박질친다. 어쩌면 그 부슬비에 잠겨버릴 것 같다는, 예상과 사실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 닥쳐온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힌 요즘이다.
그런데 세상은 요지경 속이란다. 길고 긴 부슬비가 한 장의 사진 같은 화창한 하늘을 숨기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잘 해결될 거다. 다 지나갈 거다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앞으로 세상은 요지경이다 라고 나를 타일러볼 생각이다.
아주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고 베베꼬인 이곳은 요지경 속이기 때문에 분명 어딘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맑고 아름다운 상황이 반듯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원은 일상 속에 있거나 아니면 없다. 삶에서 수 없이 흘러가는 아~주 복잡한 상황 속에서 어처구니없는 한 장의, 한 편의 낙원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시간을 셈하는 목적이니까. 그러니까 그 목적의 소중함을 위해 아픔과 슬픔, 시련 따위들이 발명된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