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갈 무렵 강원도 해변을 거닐다 보면 망치 소리가 분주하다. 뚝딱뚝딱. 어디서 이렇게 요란하게 공사를 하나 싶어 골목에 들어서면 너나 할 것 없이 입김을 내뿜으며 가게 보수 작업 중이다. 한 서핑 숍은 보드를 놓을 거치대를 만들고, 한 카페는 해진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다. 오다가다 알게 된 모 서핑 숍에 들렀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곳은 샤워장을 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매해 변함없는 진풍경이다. 지인들 사이에선 농담으로 ‘뚝딱뚝딱 기간’이라고 한다. 4월, 빠르면 3월부터 여름이 되기 전까지의 기간. 일손이 부족한 곳은 여름 시즌에도 작업은 계속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여름이 휩쓸고 간 해변 마을은 여러모로 너덜너덜이다. 하루에도 몇백, 몇천 명의 관광객이 왔다, 다음날 또다시 몇백, 몇천 명이 사용하는데 샤워 호수가 남아날 턱이 있나.
말고도 해풍 때문에 녹은 금방이고, 태풍이나 폭설이 오면 크리티컬 대미지를 정통으로 맞는 곳이 강원도, 그것도 해안이기 때문에 1년 사이에 많은 게 망가지기 일쑤다. 그렇다고 전문 업체를 부르자니 출장비가 대도시와는 또 다르다.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데 출장비만 얼마야. 그래서 이맘때 즈음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자급자족. 서퍼는 목수가 되고 요리사는 전기수리공이 되며, 바리스타는 페인트칠 고수가 된다.
샤워장을 보수하고 남은 자투리 목재들이 보이길래 “이거 호, 혹시 쓰시나요?” 더듬더듬. “아니, 쓰게?” 주섬주섬. 당근마켓이나 화원에서 산 식물들과 예뻐서 모으기 시작한 토분들이 집 안 이쪽저쪽 어지럽게 놓여 있어 거치대로 정리해야겠다 싶었는데. 뚝딱뚝딱 기간을 기념하며 직접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마음을 미리 먹고 준비라도 했으면 상관없지만, 자투리 목재를 보고 대뜸 솟아오른 자신감이 억지로 집어삼킨 마음이라서 문제였다. 주섬주섬 목재를 받을 때만 해도 머릿속엔 완벽한 화분 거치대가 만들어졌었는데 바리바리 싸 온 그걸 마당에 풀어 놓고 나니 머리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서퍼지만 수년간의 뚝딱뚝딱 기간을 몸소 버텨온 뚜뚜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야 이거 어떻게 엉엉. 답지 않게 웬 DIY냐며 한 소리 들었지만 전동드릴, 나사 뭐 이것저것을 전해 받았다. 준비 끝! 오케이! 가, 보자고!
그렇게 지옥의 ‘거지대’가 완성됐다.
나사 튀어나오고 수평 안 맞고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지만, 어디서 본건 있어서 거치대 가장 밑층 바닥에 사인을 휘갈겼다. 대뜸 솟아올랐던 자신감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지 아주 신나서 휙! 휙! 누가 보면 장인인 줄. 그래도 만족감만큼은 장인 못지않았다.
버려진 목재를 보는 순간부터 거치대로 완성되면 얼마나 예쁠까 상상했었다. 뚝딱뚝딱 만드는 시간 동안 애지중지. 서툰 손이 문제지 이 녀석은 잘못 없어요. 정성을 쏟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나만의 거치대를 만드는 모든 순간이 소중한 재미였다. 결과가 상상과 다르면 어때. 나무는 제 할 일을 다했고, 나도 만드는 동안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다.
지인들이 놀러 와서 거치대를 보며 이거 설마 산 거냐고, 그 업체 당장 신고하라고 놀릴 것 같다. 그럼 부끄럽기는커녕 자부심이 솟아오를 예정이다. 흐뭇하게 웃으며 “내꺼 들으니까 핀잔주지 마!”라는 멘트도 할 생각이다.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게 있다. 정성을 쏟는 마음. 거기에 몰래 사인하는 장난스러움까지. 행복은 남들에게 허락받는 게 아니다. 화분 거치대의 행복은 나와 자투리 목재, 나사, 사포, 전동드릴, 톱, 연필, 수평기만 알아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