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왜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일까?
Greece on the Ruins of Missolonghi (French: La Grèce sur les ruines de Missolonghi) is an 1826 oil painting by French painter Eugène Delacroix.
(본 글은 법률 전문서적의 내용을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법적 정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부 내용이 원문의 의도나 법적 해석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원문 및 법률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너무 당연해 보여서 굳이 왜 제1조에서부터 이런 선언을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은 우리 국가 질서의 뼈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출발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먼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자체는 근대에 들어 여러 나라가 ‘공화국(Republic)’을 국명에 담아왔던 흐름을 공유합니다. 왕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 권력의 주인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면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내세웠고, 해방 이후 제헌헌법 제정을 통해 같은 국호를 이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민주공화국’은 무엇을 뜻할까요? 전통적으로 ‘공화국’이란 왕정(군주정)을 부정하고, 모든 권력이 오직 국민이나 시민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민주(民主)라는 표현 역시, 국가 운영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군주’가 아니라 ‘국민’임을 나타냅니다. 결국 "군주 없이 국민이 주인"이 되는 형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라는 구도인 셈입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가 저마다 자국의 헌법에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렇다 보니 그 자체로는 “과연 어떻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지”, “국민이 정말 주인 역할을 하는 구조가 맞는지”라는 세부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이 간단한 한 문장 안에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정치질서, 권력 구조, 그리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가 농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법학자들은 이를 “국민주권주의”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왕이 “나는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았다”라고 주장하며 통치했지만, 이제는 국민이 국가의 정당성의 뿌리라는 것이죠.
그러나 “정말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느냐?”라고 물어본다면,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국민 수천만 명이 매일 정책을 일일이 결정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제도가 '대의제'입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그 대표자가 의회나 정부에서 국민 의사를 대변하죠. 하지만 대의제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생깁니다. 이에 직접민주제 요소인 국민투표나 국민발안을 통해 국민 스스로 의견을 표출하기도 합니다(헌재 2003.9.25. 2003헌마106 결정 등 참조).
정말 흥미로운 점은, 헌법이 말하는 국민주권이 단지 선거 때만 발휘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집회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통해 국민이 자신들의 주권 의사를 드러내고, 권력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헌법은 ‘주권자의 뜻에 반하는 권력은 정당성을 잃는다’라는 원칙을 구현하려 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국민주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권력의 정당화 기반'이라는 뜻이며 헌법과 법률 해석 전반에 적용되는 기본 방향입니다. 그래서 “군주제는 안 되고, 국민을 배제한 독재나 전제정도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반대급부로 “[국민이 권력 행사에 참여할 통로]를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i) 미국 연방헌법
미국은 헌법 조문에서 국가 형태를 직접 ‘공화국’으로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국 헌법 제4조에서 각 주(州)에 “공화정체를 보장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죠(미국 헌법 제4조 제4절). 그러나 누구도 “미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라고는 주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과 연방의회도 국민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선출하여 운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ii) 독일 기본법
독일은 제1조에서 “인간의 존엄”을 가장 앞에 선언하고, 제20조에서 연방국가이자 민주적·사회적 국가임을 규정합니다(독일 기본법 제20조 제1항). 특히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제20조 제2항), 우리 헌법 제1조 제2항과 비슷한 인식을 보여줍니다. 즉 우리처럼 국민주권을 핵심 원리로 삼고 있는 셈입니다.
(iii) 프랑스 헌법
프랑스 헌법 제2조 제1항은 “프랑스는 불가분의 세속적 민주적·사회적 공화국”이라고 명시합니다. 또 제3조 제1항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속하며, 국민투표나 대표자를 통해 행사된다”고 하고 있죠. 프랑스는 이민, 종교, 인종 문제 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많아, 세속주의나 평등·연대 등을 아울러 강조하는 특징적인 표현을 헌법 제1조부터 두고 있습니다.
(iv) 일본 헌법
일본 헌법은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하되, “천황의 지위는 주권을 갖는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규정합니다(일본 헌법 제1조). 즉 천황을 형식적으로 두면서도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궁극적 권위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식의 직접 규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합하면, <민주공화국>을 헌법 제1조로 딱 못 박아두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른 나라들은 제1조에 전혀 다른 가치를 적어놓기도 하고, 아예 명시가 없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실제 운용 방식은 대부분 ‘민주주의+공화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형태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i) 제헌헌법(1948)의 등장
해방 후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 하고, 제2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했습니다. 헌법 초안을 만들 때 참여한 유진오 박사는, 군주제나 독재국가가 아닌 “민주공화국”임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고 전해집니다. 군주나 소수 독재자가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죠.
(ii) 이후 개정 과정
1962년 헌법부터는 제헌헌법 제1·2조를 합쳐 현행처럼 제1항·제2항으로 구성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취지는 계속 유지된 것입니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군사정변, 유신체제 등으로 국민주권이 왜곡되기도 했고(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때마다 학자와 국민이 “민주공화국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해 왔습니다.
(iii) 헌법재판소의 등장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 아래에서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뒤, 이 기관은 여러 결정을 통해 헌법 제1조에서 비롯되는 국민주권과 민주 원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선거제도, 표현의 자유, 정당 제도, 집회·시위의 자유 같은 핵심 권리는 국민주권 구현과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해 왔지요. 이는 헌법 제1조가 비록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 모든 조항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i) 국회의 존재 이유
우리 헌법의 중심 축인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입법기관입니다. 국민이 직접 국가운영을 모두 결정하기 어려우니, 대표자에게 ‘권한’을 맡기는 것이죠. 이처럼 “국회는 국민주권의 대의기구”라는 헌법 구조 안에서 국회 의원들은 법률 제정이나 국가 재정 심의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만약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의원이 선출되거나, 위헌적 법이 만들어진다면 그 책임은 최종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ii) 대통령과 정부
행정부 수반으로서 대통령 또한 국민의 선거로 당선됩니다.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말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 여기서 다시 확인되지요. 그리고 행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면서도 국회에 책임을 지며,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 앞에 정책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도 민주공화국의 절차적 장치입니다.
(iii) 법원과 헌법재판소
사법기관인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핵심 축이지만, 동시에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관 인선이나 헌법재판관 선임에도 국회, 대통령, 그리고 여러 주체의 참여가 융합되도록 절차를 마련해 둡니다. 사법 독립이 중요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국민의 대표들이 정한 헌법과 법률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도 헌법 제1조에서 연원하는 원리와 충돌하지 않도록 신중히 설계되어 왔습니다.
현대 사회는 군주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고, 표면적으로는 전 세계가 ‘민주공화국’을 자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1조가 뜻하는 바를 흔들림 없이 재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은 국민이 정치·사회 참여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가 됩니다. 국민의 의사가 정책이나 제도에 더 반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 헌법 제1조가 “당연한 요구”임을 증명해 줍니다.
둘째, 국민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는 국민이 국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권리를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공직자나 정치인이 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면, 국민이 정당하게 “주권자의 명령에 어긋난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셋째, 어떤 법률이나 제도가 등장해도 결국 헌법 정신, 그중에서도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이념을 벗어날 순 없습니다. 제1조는 헌법 개정조차 넘볼 수 없는 핵심 가치라 평가되어, 이를 흔드는 개정 시도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결국 제1조는 엄청나게 긴 역사를 거쳐 태어났고, 현대에는 권력구조에 대한 복잡한 이론들이 더해져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비록 짧은 조항이지만, 이에 담긴 함의는 방대합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간결한 선언 속에는 국민이 주인이 되고, 그 주인인 국민이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끊임없이 결정한다는 다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본 글은 [헌법 주석서(법제처 연구용역), 한국헌법학회, 헌법 제1조]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법률 해석과 적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법률 자문을 대체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법률문제는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 해설은 원문의 취지와 맥락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설자의 정치적 견해나 가치판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