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인지 만나보시고 판단하세요"

정의

by 김소영

"좋은 인연인지 만나보시고 판단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파이팅!"

유튜브에 약간은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 댓글을 쓴 후에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사랑을 하기 전에 좋은 사람인지 판단하는 일이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이상했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사랑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부모자식 간의 사랑처럼 연인을 사랑하면 안 되나?


서로 선택이 끝나 이미 사랑하는 연인 사이거나 부부 사이라면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은 결혼할 사람을 찾는 중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순 없다.

사귀기 전이고 결혼도 하기 전인데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만나기 전에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이 사람을 과연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부지런하게 알아봐야 한다.

대화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취미 활동에 초대하면서 서로 잘 맞는지 올라오는 감정을 바라봐야 한다.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인연일 수도 있지만 나의 삶 전체를 흔들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불행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보기 어려울 수 있고, 어쩌면 이미 힌트를 주고 있는데도 사랑에 눈이 흐려질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에 그 사람의 단점과 참을 수 없는 면을 억지로 견디려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과 행동들을 언젠가는 그가 바꿔줄 수 있을 거라고 야무지게 상상한다. '나를 사랑하면 내가 말한 일들을 고쳐줄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 행동과 생각은 변함없다.

스스럼없이 마치 눈앞에 연인이 없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뭐 어때? 우린 이미 친하잖아.'


관계는 서서히 비틀어진다. 부모는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아무런 조건 없이 부모를 사랑한다. 나중에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와의 생각의 차이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부모는 자식이므로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이므로 사랑한다. 서로가 못마땅해서 속상하지만 사랑하기에 더 속상하다. 차라리 남이었으면 한 번 걸지게 욕하고 돌아서서 다시는 안 보면 될 테지만.


부모 자식 간에도 다툴 수 있는데 성장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는 일은 깊은 성찰과 판단이 필요하다. 연애가 무르익으면 결혼도 하고 함께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말했던 어른들의 이야기를 혐오하다가 나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해 버린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식장에서부터 내 친구들은 미래의 내 모습을 보았는지 마냥 웃으며 축하하기보다는 약간 서운한 표정을 보이며 침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연애에는 성공했지만, 결혼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아직까지도 인생을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사랑할 사람, 결혼할 사람을 찾는 일은 자신이 꽁꽁 감추며 아껴왔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먼저일 수 없다.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인지 먼저 부지런하게 알아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한 번의 입맞춤으로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일은 동화이기에 가능하다.


좋은 인연인지 만나보고 판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좋은 인연이란 없다. 만약에 그런 인연이 있다면 먼저 의심해봐야 한다. 타로카드의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하늘이 정해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사랑도 자신이 찾아 나서는 일이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자신이 먼저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운명의 상대가 다가왔을 때, 그를 놓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으며 자신의 사람인지 그냥 겉모습만 왕자나 공주, 황제나 여황제처럼 보이는지 그를 간파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사랑은 냉정하고 현명하다. 진실한 사랑은 끊임없이 에너지가 들어가는 성실성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다. 감정이 메말라 더 이상 어떤 사랑도 에너지도 죽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때 발휘되는 마음이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은 시골 외할머니처럼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으나 정갈한 옷을 입고 정성 들여 밥을 짓는 모습일 수도 있다. 평범하지만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모습일 수도 있다.


타로 카드에서 정의는 누구에게든 단호하게 옳지 않은 일에는 칼날을 세운다. 날카로운 칼끝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잘못한 사람은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며 잘 한 사람은 잘한 만큼 인정받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사사로운 인정이나 감정은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정의의 칼날은 그의 목을 겨눌 것이다.


연인들의 사랑은 어른대 어른으로서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지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다 헤어지게 된다면 서로에게 기여한 바를 인정해 주고 깔끔하게 헤어져야 한다.

사랑에는 냉정하게도 정의로운 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함께 보낼만한 사람인지 사귀기 전에 미리 판단해야 한다.

사귀게 된다면, 우린 서로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 쉬우므로.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7화그 사람이 날 싫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