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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Apr 14. 2024

사고뭉치 대니얼

필드 OJT (2)

 대니얼은 흥분한 남자들에 둘러싸인 채 생각했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것인가. 남자들은 대니얼을 무언가 수상한 사람으로 생각해 위해를 가할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대니얼은 이내 차분함을 되찾고 남자들 중 주동자격의 남자 한 명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흡연하시면 안 돼요. 여긴 금연구역이라고요. 여기서 흡연하신 분들 제가 다 카메라로 찍었으니 다 적발되신 겁니다. 범칙금 부과할 테니 한 분씩 신분증 제시하세요."


 이렇게 말하며 대니얼은 상의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내보였다. 신분증에는 '동대문구청 건강증진과' 소속 공무원으로 되어 있었다.


 "뭐?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여긴 내가 일하는 회사 건물 앞이라고! 흡연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매일 출근해서 여기서 담배를 피웠는데..."


 "저걸 좀 보시라고요."


 대니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남자들은 시선을 돌렸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흡연구역'으로 표시되어 있던 푯말이 '금연구역'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건 난 모르겠고요. 얼른 신분증 주세요. 바빠요."


 "자, 잠... 잠깐만!"


 남자는 뒷걸음쳤다. 어느새 남자 주위에서 대니얼을 향해 공격적인 눈빛을 보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관계없는 사람인척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겨진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당황한 듯 말했다.


 "제가 지갑을 사무실에 두고 나와서요. 올라가서 가져와도 될까요?"


 "할 수 없죠. 얼른 가져오세요."


 대니얼이 한숨을 쉬며 말하자 남자는 고개를 꾸벅이더니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달음질쳤다. 남자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대니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오올! 많이 늘었는데?"


 본부와 연결된 이어폰에서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대니얼이 훈련을 마치고 갓 나왔을 때는 물을 사이다로 바꾸는 간단한 것도 성공하지 못했었다. 짧은 기간만에 대니얼의 설정술(設定術)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고 다른 훈련생이나 신입들의 성장속도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것을 제임스와 클레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니얼이 스스로 특출 나다는 것에 자만하지 않도록 그들은 말을 아꼈다. 대신 조소 섞인 칭찬에 대니얼이 반응하지 않자 클레어는 약이 올랐는지 씩씩거리며 건방지다는 둥 부주의하다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니얼은 안경을 벗어 접은 다음 가방에 넣었다. 잔소리꾼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한편 동대문지부 본부에서는 제임스와 클레어가 대니얼의 활동을 모니터 하고 있었다. 대니얼이 안경을 벗어 가방에 넣자 'No Signal'이라는 글자와 함께 스크린이 먹통이 되었다. 음성 연결도 끊겨 '지지직'하는 소리만 났다. 클레어가 책상을 내리쳤다. 제임스는 몰래 웃음을 지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한 대니얼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 답십리역에서 사람들이 몰두해 있는 디지털 기기와의 연결을 일시 중지 시킨다고 해도 다음 역으로 이동하면 끊겼던 접속이 다시 연결될 테니 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니얼은 가방 속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순찰을 나오기 전 캐비닛에서 장비를 챙기는 척하며 몰래 하나 들고 나온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대니얼은 기후동행카드를 태그하고 답십리역 개찰구를 통과했다. 열차를 탑승 플랫폼까지 내려간 후에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배터리에 구리코일을 칭칭 감아놓은 물체가 있었다. 이것의 정체가 EMP라는 것을 대니얼은 알고 있었다. 그 물체의 겉에는 타이머를 설정할 수 있는 패널이 부착되어 있었다. 가방 밖으로 그 물건을 꺼내는 것은 지하철역 내 CCTV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수도 있다고 생각해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그때 맞은편 승강장에 지하철이 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맞은편 승강장에 지하철이 들어왔다. 이번엔 대니얼이 있는 쪽 승강장으로 열차가 들어왔다. 대니얼은 가방 안에서 EMP의 스위치를 켰다. 타이머에 10초를 입력한 후 가방 채로 벤치에 두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숫자 열을 센다.... 일곱, 여덟, 아홉, 열...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펑!'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폭발과 함께 주변의 공기층을 밀어내 발생하는 충격파가 밀려와 사람들이 나자빠졌다. 승강장과 지하철 열차 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들이 '파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스파크를 뱉어 냈다. 열차 안팎에서 손에 들고 있든 스마트폰에서 스파크가 튀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스크린도어와 열차 도착안내용 스크린, 승강장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반경 50미터 이내의 모든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피어오르는 연기로 인해 이내 자욱한 연기가 지하철 승강장 안을 메웠다. 


 사람들은 입과 코를 막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이 과정에서 넘어지고 깔려 다치는 사람도 발생했다. 답십리역 역무실 담당자가 이용객들의 대피를 안내하기 위해 스피커로 방송을 시도했지만 폭발이 발생한 지하 2층 승강장 쪽 스피커가 먹통이었다. 역내 지하 1층은 정상적으로 스피커 방송이 가능했다. 역무원들이 나와 이용객들의 대피로를 수신호로 안내했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출동했다. 경찰 순찰차와 경찰 특공대도 현장에 도착했다. 빠져나온 사람들은 지하철역 출구 근처에 널브러져 기침과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구급대원들은 대피한 사람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제공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지하철역 일대의 도로가 마비되었다. 각 언론사의 기자들이 카메라와 함께 몰려들었다. 거리는 온통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소리, 사이렌 소리, 확성기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늘 오후 4시경 동대문구 답십리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에 의해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전자기기들이 파손되었고, 승객들이 모두 대피하는 과정에서 12명이 부상을 입거나 연기를 흡입하고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폭발로 인해 역내에 정차하고 있던 상행과 하행 양쪽 방향 두 개 열차가 모두 운행이 정지되었습니다. 서울지하철공사는 열차의 운행을 재개하기 위해 복구 인력을 최대한 투입하였지만 열차와 스크린도어의 개폐장치 등을 작동시키는 전자 부품들이 전부 파괴되어 복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으로 지하철 5호선이 전면 운행 중단되었으며 퇴근시간에 혼잡이 가중되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미국과 우호 관계에 있는 한국에 대한 이슬람 극단적 원리주의 무장단체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검은색 옷을 입은 20대 후반 남성 용의자를 긴급 수배하고 CCTV 영상과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뉴스 속보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대니얼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TV 화면을 채웠다. 한숨을 쉬며 TV 리모컨을 내려놓은 제임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클레어는 TV와 대니얼을 번갈아 노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 정도 파괴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바보 아냐? 파괴력의 여부를 떠나서 지하철역 같은 실내에서 저걸 쓰면 어떡하냐?"


 때를 기다렸다는 듯 클레어가 타박을 하고 들어왔다. 잔소리 대마왕이 목소리를 점점 더 고조시켜가고 있을 때 책상 위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감싸고 있던 얼굴에서 손을 떼고 제임스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제임스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후우'하고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전화를 받는 제임스.


 "여보세요. 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네. 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8시요? 네, 아닙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제임스가 대니얼을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자네랑 같이 본부로 들어와서 조사 심문받으랜다. 흐흐흐. 자네가 퇴마단 일원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경찰에 자수하거나 하면 우리 조직 전체가 밖으로 드러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본부에서 높으신 분들이 자네를 심문하면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려는 거야. 흐흐흐. 좌우지간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 그러면 그 아줌마 얼굴을 또 봐야 하는 건가? 그게 좀 짜증 나네."


 "저는 그럼 경찰에 넘겨지는 건가요?"


 "그렇게 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 내일 조직에서 결정해 주겠다는 거야."


 대니얼에 대한 처분을 퇴마단에서 결정한다. 무언가 불공평한 것 같다는 느낌이 대니얼의 머릿속에 피어올랐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입장이 아닌지라 조용히 고개만 숙였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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