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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Apr 07. 2024

테러와 훈련 사이

필드 OJT (1)

 등록하고 온 지 이틀이 지났다. 대니얼은 루카스에게서 그녀에 대한 대략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역본부에서 마주쳤을 때 제임스가 눈을 부릅떠가며 적대감을 표시했던 줄리아라는 여자에 대해서 말이다. 퇴마단 조직 내 두 개의 지역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다고 했다. 십여 년 전 제임스가 그녀를 퇴마단으로 영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임스는 자신의 제자나 다름없던 그녀를 상사로 두게 된 것일까. 루카스의 말에 따르면 제임스는 원래 2급 퇴마사로 전국구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줄리아가 제임스를 배신하고 공적을 가로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퇴마단 본부에 개인적으로 인맥을 만들고 제임스를 모함해서 강등까지 시켰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도 좀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등 사례였다고 한다. 줄리아가 여자였기 때문에 직장 내 성추행 문제로 제임스를 엮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루머도 돌았었다고 했다. 여하튼 2급에서 5급으로 강등된 것으로도 모자라 보직도 지부장으로 내려앉게 된 것이다. 퇴마단 내에서 5급 이상이면 도단위 영역을 담당하는 지역본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통인데, 지금의 제임스는 고작해야 동대문구 하나만 관할하는 지부의 수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이례적 인사조치였다.


 "선배님은 그 줄리아라는 여자와 일해본 적 있으신가요?"


 "응, 제임스랑 같이 강남지부에 있을 때 같은 팀으로 일한 적이 있긴 하지. 근데 별로 가깝게 지낸 건 아니었어. 뭔가 좀 새침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어서 살갑게 대하기가 좀 꺼려지더라고."


대니얼의 질문에 루카스는 기억을 떠올리듯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대답했다. 루카스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 문이 벌컥하고 열렸다.


 "아! 깜짝이야!"


 루카스가 놀라 의자에서 펄쩍 튀어 올랐다. 문쪽에는 클레어가 매서운 눈초리로 둘을 쏘아보고 있었다. 


 "호출 경보 울린 거 못 봤어요? 왜 아직도 이러고 계신 거죠?"


 루카스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보더니 "아차! 미안, 미안." 하며 쏜살같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클레어는 도망치듯 사라지는 루카스의 뒷모습을 한동안 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이번엔 대니얼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그리고 너는! 순찰활동 나갈 시간 아니야?"


 "아직 쉬는 시간이 2분 남았는데요."


 "토 달지 말고 원장실로 따라와!"


 입을 삐죽거리며 클레어를 따라 원장실로 들어서자 루카스가 캐비닛에서 장비를 꺼내고 있었다. 얼마 전 본부에서 지급해 준 EMP탄을 챙기는 것이 보였다.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나 보죠? 그것을 챙기시는 거보니.."


 "본부에서 내려온 지침에 따라 이제부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모든 출동 시 EMP를 지참하고 나가게 되었어."


 제임스가 상황판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상황판이란 원장실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관내 지도를 말한다. 평시엔 그냥 벽에 붙여진 지도로 보이지만 필요시 지도가 디지털 상황판으로 변한다. 지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동대문구의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광역주술 송수신 강도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광역주술의 강도나 밀도가 높을수록 더 짙은 색으로 표시된다. 동대문구 내 이곳저곳이 울긋불긋하다. 표적주술에 의해 곧 빙의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상황판에서는 그 빙의체가 있는 위치를 붉은 원에 검은색 점이 찍힌 아이콘으로 표시해 주며 깜빡깜빡하며 점멸한다. 점멸하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빙의체가 위험행동을 실행에 옮길 순간이 임박했음을 나타낸다. 장비를 다 챙긴 루카스가 원장실을 나서며 "다녀올게!"하고 외쳤다. 지금처럼 표적주술 빙의체가 발견되면 5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너도 어서 준비해!"


 잠시 멍하게 있었던 대니얼을 향해 어김없이 클레어의 호통이 날아들었다. 본격적으로 퇴마단의 일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 사람의 몫을 해내기 전이다. 필드에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매일 수행하며, 실제 상황이 발생 시 사수인 클레어와 함께 동반해서 출동하는 것이 대니얼의 일과였다. 앞으로 이런 트레이닝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제임스가 상황판에서 몇 개 구역을 손가락을 짚어 주었다. 대니얼은 그 구역의 도로명 주소를 순식간에 머릿속에 외웠다. 캐비닛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벗어두었던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찼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원장실을 나서려는데 클레어가 대니얼을 불러 세웠다.


 "안경 제대로 착용하라고! 알았어? 전부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 대충 할 생각하지 말고. 상황 발생하면 호출할 테니까 바로 튀어오고! 오케이?"


 잔소리꾼 선배 나셨네. 대니얼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네."라고만 대답하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란 것은 디지털 매체에 노출이 빈번하고 반복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장소를 찾아가 사람들의 시청을 방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광역주술 수신자들은 당장에 이상행동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신입 퇴마사에게는 적당한 연습상대인 것이다. 하지만, 영상 시청에 몰입하던 사람들은 방해를 받으면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오기 때문에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며, 민폐로 취급받기 때문에 마냥 방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적절한 설정술(設定術)을 사용해서 상황을 원만하게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퇴마사는 블랙포스와 빙의체에게는 인간 본연의 능력으로 대처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는 설정술이라는 술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며 대니얼은 현장으로 향했다. 오늘 대니얼이 가야 하는 현장은 대형 브랜드 커피숍, 지하철역, 그리고 몇 곳의 흡연구역이었다. 대니얼은 가장 먼저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에 도착한 대니얼은 주문을 위해 카운터 앞에 섰다. 먼저 도착한 손님을 응대하고 있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있었다. 무언가 업무를 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간혹 있는 것 같았지만 OTT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둘이나 셋이 모여 앉아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이러니 상황판에 붉은색이 짙게 표시되었던 것이구나'하고 생각할 무렵에 점원이 대니얼에게 주문하시겠냐고 물어왔다.


 "쿨라임 피지오 톨 사이즈 하나 주세요."


 점원이 단말기에 주문을 입력하는 동안 대니얼은 카운터 옆쪽에 세워져 있는 아크릴 피오피로 한 발짝 다가섰다. 피오피에는 Wifi 비번이 인쇄되어 있었다. 대니얼이 손을 내밀어 비번의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비볐다. 맨 끝자리가 '9'에서 'T'로 바뀌었다. 그 순간 커피숍에서 그 Wifi에 접속해 있던 모든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접속이 끊어졌다. 대니얼이 주문한 음료를 받아 커피숍을 나오려고 할 때 Wifi 접속이 되질 않는다며 한 남자가 점원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설정술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술법을 건 퇴마사가 자리를 뜨면 1시간 정도만 지속된 후에 사라지게 된다. 이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사람들이 디지털 매체에 빠져들듯이 몰두하던 상태가 일시 중단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에 깊은 몰두 상태를 오래 지속할수록 도파민 분비에 의한 중독회로가 가동되고, 그 상태가 계속되면 전두엽이 마비되는 것이다.  언어, 감정조절, 논리적 사고 등 고등정신작용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이성적 판단력이 약해지고 충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판단력을 상실한 대중들을 대상으로 블랙포스는 자극적인 메시지로 선동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정상인의 뇌와 사이코패스의 뇌를 PET CT 촬영해 비교한 사진으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전두엽 부분 전반에 걸쳐 기능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기능이 약할수록 파란색으로 표시되는데 사이코패스는 전두엽을 비롯해 안와전두엽, 편도체 부분에 이르기까지 짙은 파란색이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며 충동 억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퇴마단에서는 디지털 매체에 지속적이고 장기간 노출된 뇌는 전두엽의 기능저하가 누적되어 결과적으로 이런 사이코패스의 뇌와 같은 상태가 된다고 공식적으로 결론지었다. 그 디지털 매체를 통한 광역주술로 사람들의 판단력을 빼앗고 그리고 이렇게 사이코패스의 뇌를 갖게 된 사람을 찾아내어 표적주술로 이상행동을 촉발시키는 것이 바로 블랙포스라고 밝혀낸 것이다.


대니얼은 커피숍을 나와 두 번째 장소인 흡연구역에 왔다. 오늘 임무를 맡은 구역은 커피숍에서 멀지 않아 걸어왔다. 


 "두 번째 임무지 흡연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보고를 하며 대니얼은 주머니에서 풍선껌을 꺼내어 포장을 뜯고 입에 집어넣었다.


 "오케이. 행동에 바로 들어가도록."


 클레어가 대답하는 목소리가 안경에 달려있는 골전도 헤드폰으로 들려왔다. 지금 대니얼이 쓰고 있는 안경을 통해 본부에서 대니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모니터 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밀집해 있는 오피스가의 건물 흡연구역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또는 셋이 대화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혼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니얼은 담배를 피우는 흡연구역으로 들어섰다. 가운데에 커다란 재떨이가 놓여 있다. 재떨이는 모래로 채워져 있고 이미 그 모래엔 수많은 담배꽁초들이 꼽혀 있었다. 대니얼은 조용히 재떨이로 다가가 씹고 있던 풍선껌을 '퉤'하고 재떨이 모래 위에 뱉어냈다. 그러자 풍선껌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니얼은 그것을 보고 얼른 뒤로 돌아 되돌아가려고 했다. 흰 연기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연기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연기와 섞였다. 그러자 한 순간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모두들 격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주저앉기도 했다. "이건 최루가스야!"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재떨이에서 최루가스가 피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모두 반대쪽으로 멀어졌다. 모두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보고 대니얼은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때 누군가 대니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붙잡았다.


 "어이, 이거 봐. 당신이 아까 재떨이에 무언가 넣지 않았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눈치를 채고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덩치가 크고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남자가 대니얼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재차 물어왔다.


 "이거 최루가스. 당신이 한 짓 아니냐고!"


 남자가 대니얼을 추궁하는 모습을 본 주변 흡연자들이 모여들어 거들기 시작했다.


 "너 뭐 하는 놈이냐?"


 "묻지 마 테러 같은 거 하려고 한 거냐?"


 "경찰한테 넘기자고!"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흡연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대니얼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가만히 입을 닫고 있었다. 어쨌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에 향해 있던 이들의 시선을 끊어낸 것으로도 광역주술의 피해 누적을 잠시나마 늦춘 것이니까 말이다. 


 "본부다. 절대 물리적으로 대응하지 마. 신중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것."


 제임스의 목소리다. 클레어와 함께 대니얼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니얼의 이마에서 땀이 솟아났다. '어떻게 해결하지?' 생각하며 대니얼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대니얼을 둘러싼 남자들은 대니얼에게 여유를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대니얼의 팔을 잡아끌었다.


 "뭐 해? 이 새끼 경찰에 넘겨버리자고!"


대니얼은 남자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큰일이다. 이대로면 소란에 휘말리게 될 텐데.' 걱정부터 앞섰다. 어떻게든 해결을 짓고 이곳을 떠나야 했다. 일반인 대여섯쯤은 주먹으로 상대해도 한꺼번에 제압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받은 터였다. 설정술을 통해 빠져나가거나 다른 수를 써야 했다. 하지만 방도가 떠오르질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대니얼을 잡아 끄는 남자들의 손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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